정부가 침체된 경기를 떠받치고 민생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30조5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편성했다. 세출 확대와 세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국채 발행을 포함한 다양한 재원 조달 방안을 동원했지만, 전체 재원의 3분의 2 가까이를 빚으로 충당하면서 국가채무와 재정적자 모두 눈에 띄게 불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19일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5년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을 심의·의결했다.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4분기 연속 0% 내외의 저성장이 이어지자, 정부는 하반기 경기 반등을 뒷받침할 재정 마중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추경은 세출 확대 20조2000억원, 세입 경정 10조3000억원으로 구성됐다. 이 중 경기진작 분야에 15조2000억원, 민생안정에 5조원이 배정됐다. SOC 조기 집행, 수출 활력 제고, 중소기업·청년층 지원, 재해 복구와 농산물 수급 안정 등이 주요 사업이다.
정부는 전체 추경 재원 중 5조3000억원은 지출 구조조정, 2조5000억원은 기금 여유 재원 활용, 3조원은 외평채 발행 규모 조정을 통해 충당하고, 전체의 65%에 해당하는 19조8000억원은 국채를 통해 조달한다.
임기근 기획재정부 2차관은 “시장에서는 이미 올해 20조원 안팎의 추경과 상당한 국채 발행 가능성을 연초부터 예상해 왔다”며 “현재의 국채 금리 수준에는 이러한 예상을 반영한 상태로, 추가 발행이 시장에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국채는 수요 기반이 견조하고, 외평채 감액도 외환시장에 부담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재정 여건과 시장 수용성을 모두 고려해 결정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채 발행 규모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적자국채 추가 발행 규모가 너무 크다”면서 “국채 금리 상승이 시장 금리 전반에 영향을 미쳐 가계 소비 여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추경에 따라 국가채무는 기존 1280조8000억원에서 1300조6000억원으로,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86조4000억원에서 110조4000억원으로 증가했다. GDP 대비 채무 비율은 48.4%에서 49.0%로 0.6%포인트 상승하고,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도 -3.3%에서 -4.2%로 확대됐다.
임 차관은 “GDP 대비 4.2% 적자, 49.0% 국가채무는 국제 기준으로는 아직 위험 수준은 아니다”라며 “재정 지속 가능성은 지출 구조조정, 기금 활용 등을 통해 충분히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세입 경정은 올해 세수 실적을 반영해 연간 수입 전망을 하향 조정한 조치다. 정부는 올해 국세 수입이 당초보다 10조3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보고, 이를 추경안에 반영했다.
세목별로는 법인세에서 4조7000억원, 부가가치세에서 4조3000억원, 교통세·개별소비세·교육세를 합쳐 총 2조3000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법인세는 전년 실적 대비 증가했지만 기대치에 못 미쳤고, 부가세는 민간소비 부진과 유류세 인하 지속 등의 영향으로 실적이 하향 조정됐다. 반면 상속세는 9000억원 증가 요인이 반영됐다. 고액 납세자 사망 등 우발 요인이 예년보다 많았던 것이 영향을 미쳤다.
임 차관은 “세수 부족이 명확히 판단되는 상황에서 이를 예산에 반영하는 것이 재정운용의 정상화”라며 “경제 여건과 세수 실적을 토대로 세입경정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지출 구조조정은 연내 집행이 어려운 사업과 여건 변화에 따른 조정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유엔 분담금 조정분, 대학 등록금 연동 예산 축소 등이 대표 사례다. 임 차관은 “사업 여건과 우선순위를 기준으로 철저하게 실용 정신에 따라 조정했다”며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고 현장에 필요한 예산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금 재원 활용은 고용보험기금, 주택기금, 전력기금 등 기금 자체 여유 자금을 해당 기금의 세출사업에 충당한 것으로, 기금 자산을 다른 용도로 전용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유병서 기재부 예산실장은 “이번엔 과거처럼 기금 자금을 다른 분야로 가져다 쓰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외평채 감액 조정과 관련해서는, 환율 안정과 외평기금 자산 여력을 감안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외평기금의 외화자산은 약 274조원으로 충분하고, 환율도 안정돼 있어 3조원 정도의 외평채 감액은 외환시장에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추경이 본예산보다 더 적극적인 재정 운용 기조로 해석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선, 기조 전환보다는 상황 대응이라고 선을 그었다. 임 차관은 “확장 재정으로의 전환이라기보다, 현재 국면에서 필요한 대응을 하는 것”이라며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적극성은 병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차와 2차 추경 모두 상황에 따른 대응이며, 본예산을 통해 기조를 판단해 달라”고 덧붙였다.
재정준칙 미준수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지만, 정부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임 차관은 “지난 정부에 이어 재정준칙법이 규정하고 있는 (관리재정수지 비율) -3%를 지키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오히려 경직적 적용이 재정운용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 수용성과 실현 가능성을 재평가할 시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