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간 가공식품 가격이 오르면서 생활물가가 19% 넘게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신종 코로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내외 공급충격이 겹친 영향이다.

18일 한국은행은 이날 개최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 ‘최근 가공식품 등 생활물가 흐름과 수준에 대한 평가’를 발표했다. 보고서 작성에는 한은 조사국 물가동향팀 이승호·장태윤·김상호·위승현 등이 참여했다.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뉴스1

연구진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생활물가는 소비자물가에 비해 높은 상승률을 보이며 물가수준을 높여왔다. 팬데믹 기간 중 발생한 공급망 차질과 러-우전쟁, 기상여건 악화 등 공급충격이 중첩되면서 생활물가에서 32.4%를 차지하는 식료품·에너지 물가가 크게 오른 데 기인한다.

그 결과 고(高)인플레이션이 시작된 2021년부터 올해 5월까지의 생활물가의 누적 상승률은 19.1%로, 소비자물가(15.9%)보다 3.2%포인트(p) 높았다. 그나마 작년 하반기에는 농산물 물가·국제유가 하락에 힘입어 생활물가와 소비자물가의 격차가 축소됐지만, 올해는 가공식품 가격 인상으로 이 격차가 다시 확대되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물가수준을 OECD와 비교해 보면, 의·식·주 등 필수재의 물가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2023년 기준 의류(161), 식료품(156), 주거비(123) 물가수준은 OECD 평균 100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특히 과일·채소·육류가격 수준은 OECD 평균의 1.5배 이상이며, 빵이나 유지류 같은 가공식품의 가격도 높은 편이다.

특히 가공식품 및 개인서비스 가격은 한동안 3%를 상회하는 높은 오름세를 보이면서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대한 해당 물가의 기여도는 점차 확대돼, 지난달에는 전체 상승분의 74.9%를 차지했다.

생활물가 상승은 가계의 부담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2021년 이후 가계의 명목 구매력(근로소득)이 물가상승률을 상쇄할 정도로 충분히 증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21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평균 실질구매력 증가율은 2.2%로, 팬데믹 이전(2012~2019년, 3.4%)과 비교할 때 상당 폭 작아졌다.

필수재 물가 상승은 소비지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 조사국에서 지난달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올해 1~4월 중 소비지출을 늘리지 않은 응답자 중 62%는 물가상승에 따른 구매여력 축소를 주원인으로 꼽았다.

연구진은 생활물가 상승이 누적될 경우 소득계층 간 인플레이션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취약계층의 생활비 부담이 더욱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저소득층은 소비바스켓에서 의식주 등 필수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다.

이에 더해 같은 품목 내에서도 저가상품 가격이 더 크게 상승하는 ‘칩플레이션’ 현상은 체감 인플레이션 불평등을 한층 더 심화시킨 것으로 평가됐다. 저소득층은 저가 상품에 대한 지출비중이 이미 높기 때문에 저가 상품 가격 상승시 소비대체가 어려워 특히 더욱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연구진은 “생활물가 상승으로 가계의 체감물가가 높은 수준을 지속하는 상황은 가계 기대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줘, 중장기적 관점에서 물가안정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 규제 및 진입장벽 완화 등을 통해 기업간 경쟁을 촉진하는 한편, 원재료 수입선 다변화를 통해 특정 품목의 충격이 여타 품목으로 확산되는 정도를 완화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