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6월 13일 오전 10시 42분 조선비즈RM리포트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순환출자 의혹을 받는 고려아연에 대한 현장 조사를 마쳤다.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검토 중이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해당 건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말하면서 일각에선 위법으로 결론이 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지만, 공정위는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고려아연이 법이 규제하는 행위를 회피하는 방식을 사용한 만큼 공정위의 제재가 순탄하진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13일 경쟁당국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달 26일부터 시작된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최근 마쳤다. 현재는 입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고려아연의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페레이션(SMC)이 영풍의 주식을 취득한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모회사다.
공정위는 고려아연에 대해 현장 조사가 이뤄진 것이 직권 인지가 아닌 제3자의 신고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신고가 들어와 위법 여부를 확인하는 것일 뿐이라는 뜻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피심인의 위법에 대해) 직권 인지는 심증을 갖고 하는 것이지만, 신고 사건이면 일단 (신고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려아연 순환출자 의혹 조사는 이 회사의 경영권을 차지하려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의 신고로 시작됐다. 고려아연의 지배구조는 ‘영풍→고려아연→선메탈홀딩스→선메탈코퍼레이션(SMC)’이었다.
지난해 모회사인 영풍이 MBK파트너스와 손을 잡고 고려아연의 현 경영진으로부터 경영권을 뺏으려고 하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 등은 갖고 있던 영풍 지분을 SMC로 넘겼다. 양사가 서로의 지분을 10% 초과해 보유하면 상대방 회사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데, 고려아연이 영풍의 의결권을 박탈하기 위해 이 점을 파고든 것이다. 당시 영풍은 고려아연 지분 25.42%를 갖고 있었다.
문제는 회사 지배구조가 ‘영풍→고려아연→선메탈홀딩스→SMC→영풍’의 순환출자 형태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공정거래법상 영풍과 같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은 새로운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면 안 된다.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을 공정위에 신고한 것도 이 맥락이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월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관계 확인, 자료 요청, 의견 청취 등 절차를 거쳐 법 위반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며 “추가적인 문제점이 발견된다면 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고려아연이 순환출자 구조를 만든 건 맞지만, 위법인지를 두고서는 논란이 있다. 공정거래법은 순환출자 금지 행위를 국내 계열사에 대해서만 한정하고 있어서다. 이번에 고려아연이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 때 이용한 SMC는 호주에 있는 손자회사다.
공정거래법은 규정을 회피하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포괄적인 탈법 행위를 규정해 놓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타인의 명의를 이용해 계열사의 주식을 자기 계산으로 취득하거나 소유해선 안 된다.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는 있지만 탈법 행위는 국내외 구분 없이 모든 회사에 금지된다고 봐야 한다는 게 공정위의 시각이다. 한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는 “공정위에서 고려아연을 순환출자 조항으로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시각이긴 하다”라면서 “그러나 탈법은 법을 우회적으로 회피하는 행위를 뜻하는데, (이것으로 처벌할) 가능성은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영풍에 대한 주식 매입은 SMC 차원에서도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아내고 자체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며 “이사회의 의결을 거친 합리적인 재무적, 사업적 판단”이라고 했다.
한편 지난 3월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외 계열사를 이용한 순환출자 구조 형성 금지를 법제화하기 위해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 국면으로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가 열리지 않아 처리되지 못하고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