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이 지난 30년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언급하며 새 정부가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12일 한은 창립 75주년 기념사를 통해 “지난달 경제전망에서 발표했던 것처럼 올해 경제성장률은 0.8%, 내년 성장률은 1.6%로 지난 2월 전망에 비해 큰 폭으로 하향 조정됐다”면서 “올해 예상되는 성장률은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위기를 제외하고는 지난 30년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이러한 낮은 성장률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인한 수출 둔화 우려가 큰 부분이지만, 지난 6개월간 정치적 불확실성 아래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상반기 성장률이 전년동기대비 0.1%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점 역시 중요한 요인”이라고 했다.
이어 “한국은행은 이러한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그만큼 경기부양 정책이 시급해졌다고 보고 있다”면서 “우리는 작년 10월 이후 네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등 경제 활력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할 생각”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추가 인하 폭은 거시지표의 흐름을 살펴본 뒤 결정하겠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를 과도하게 낮추면 실물경기 회복보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큰 상황”이라면서 “지난 3월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연율 기준으로 약 7% 상승했으며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확대되고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장기적인 경기 부양을 위해 구조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0년대 중후반에만 해도 4% 수준이었던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면서 지금은 2%를 밑도는 수준까지 빠르게 하락했다”면서 “분기별로 역성장이 발생할 확률은 2024년 약 14%로서 10여년 전에 비해 3배나 높아졌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변화를 고려하면 현 상황에서 경기회복을 위한 부양책이 시급한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성장잠재력의 지속적인 하락을 막고 경기변동에 강건한 경제구조를 구축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면서 “급하다고 경기부양 정책에만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사후적으로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이 총재는 또 “충분한 조율과 사회적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좋은 정책이라도 이해집단의 저항에 부딪쳐 좌초될 수밖에 없다”면서 “새로 출범한 정부가 구조개혁 과제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리더십을 발휘해 당면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고 했다.
미래 도전 과제로는 디지털 혁신과 AI(인공지능) 확산에 따른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총재는 그 일환으로 한은은 ‘프로젝트 한강’과 ‘프로젝트 아고라’를 통해 미래 디지털 화폐와 디지털 금융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다고 소개했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도 관계기관과 긴밀하게 협의하겠다고 했다. 이 총재는 “원화 표시 스테이블코인은 핀테크 산업의 혁신에 기여하면서도 법정화폐의 대체 기능이 있는 만큼, 안정성과 유용성을 갖추는 동시에 외환시장 규제를 우회하지 않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한은의 자체 AI 개발 현황도 소개했다. 이 총재는 “한국은행은 국내 업체가 구축한 ‘소버린(Sovereign) AI’를 기반으로 당행에 특화된 AI를 개발하고 있으며 올해 하반기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업이 국내 AI 산업 발전을 위한 민관 협력의 모범 사례로 자리잡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