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이재명 대통령이 윤석열 정부 시절 임명된 에너지 공공기관장들과 ‘불편한 동거’를 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기후에너지부 신설, 재생에너지 확대 등 윤석열 정부와 다른 에너지 정책 기조를 내세우고 있어, 양측 간의 정책 엇박자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 후기 임명된 ‘알박기 인사’들이 윤석열 정부 2~3년 차에야 임기를 마쳐 많은 에너지 공공기관장의 임기가 지난해에야 시작된 데다, 대통령 자리가 공백이었던 올해도 기관장 임명이 이어진 탓이다. 올해 이 대통령·신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새로 임명할 수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에너지 공공기관 수장은 전체의 3분의 1가량에 불과하다.

11일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산업부 산하 에너지 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 공공기관 총 24곳(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제외) 중 올해 기관장이 교체되는 곳은 8곳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보면, 기관장이 공석(空席)인 곳은 한국전력거래소와 한국가스기술공사로 두 곳이다. 한국전력거래소의 경우, 2021년 4월 선임된 정동희 이사장이 최근까지 재임하다가 “새 정부 출범 전 물러나는 게 맞다”며 5월 말 퇴직했다. 한국가스기술공사 사장은 지난 2024년 5월 조용돈 사장의 해임 이후 공석인 상황이다.

임기는 종료됐지만 후임 기관장 인사가 지연돼 전임자가 계속 직무를 수행 중인 곳도 있다. 한국에너지공단, 한전 KPS가 대표적이다. 이들 기관장은 모두 2021년~2022년 초 임명된 문재인 정권 인사로, 이들은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 이재명 정부 등 3개 정부에서 모두 일하게 된다. 문 정부의 정권 말 알박기 인사와 윤 전 대통령의 공공기관장보다 짧았던 임기(2년 11개월)가 맞물린 탓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한국가스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지역난방공사 등 주요 에너지 공기업 기관장 임기가 만료될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기관장 공모부터 인선 절차에 3~4개월이 소요되는 것을 고려하면, 새로운 기관장 선임은 내년 초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전 정권에서 임명된 12개 기관장과 최소 6개월 이상 함께 해야 한다. 알리오에 따르면, 내년 기관장 임기 만료 예정 기관은 네 곳, 내후년은 발전 공기업 다섯 곳을 포함해 총 아홉 곳이다. 한국광해광업공단, 한국석유관리원,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 등 세 곳은 기관장 임기가 2028년까지 이어진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들이 윤석열 정부에서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로 남았던 것처럼, 이재명 정부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지속되는 셈이다.

문제는 에너지 정책 방향이 정권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는 친원전 정책을 추진했지만, 이재명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햇빛연금·바람연금,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실현 등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정권과 기관장의 정책 성향이 다르면 국정과제 이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한국전력 사장 교체 여부는 에너지 공공기관 중에서도 주목받는 대목이다. 한전은 전력망 확장과 송전선로 건설 등 정부 예산과 인허가에 긴밀히 연계된 사업을 주도하는 핵심 공기업으로, 정부 정책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한전 사장은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권 교체 시마다 사장 교체가 이뤄져 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김동철 현 한전 사장이 내년 9월인 임기를 끝까지 채울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다.

일부 공공기관장의 자진 사퇴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과거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각 부처 장관이나 청와대 참모들이 직접적인 사퇴 압박을 가하는 것은 불가능해졌지만, 경영평가나 국정감사 등을 통한 간접적인 압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철학이 맞지 않는 공공기관장은 자진해서 사퇴해야 한다”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공공기관장 교체 논란을 제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법안도 발의된 바 있다. 박해철 의원은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2년으로 단축하고, 대통령 임기 종료 3개월 후 자동 종료하는 법안을 냈다. 양부남 의원도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심의·의결한 후보자를 즉시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통지하도록 하고, 부적합하다고 판단할 경우 재의결하게끔 한다’라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다.

대통령 임기와 기관장 임기를 연동시키는 제도 개혁은 여야 모두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법을 개정하더라도, 이미 재직 중인 기관장에게 소급 적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권이 바뀌면 공공기관장은 재신임을 받는 구조로 제도를 정비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란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