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법 개정안 발표가 평소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관가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세법 개정안은 매년 7월 말 발표됐는데, 올해의 경우 정권이 중간에 바뀌면서 새 정부의 국정 운영 철학을 반영하는 데에 추가로 시간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1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세법 개정안 발표 시점은 미정이다. 기재부는 매년 7월 말에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열고 다음 해에 바뀌는 세금 제도를 모아 세법 개정안을 공개한다.
기재부는 올해도 이런 시간표에 맞춰 세법 개정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기 대선과 정권교체라는 변수가 생겼다. 새 정부가 들어서며 세법 개정안의 방향 자체가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세법 개정의 틀을 만들고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아직”이라며 “다음 달 중에 확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하면서 2017년 5월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도 세법 개정안 발표를 약간 미룬 바 있다. 그해 세법 개정안은 8월 2일에 공개됐다. 현재 기재부 내에서는 세법 개정안을 준비해 발표하기에는 8월 초도 빡빡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세법 개정안은 기존보다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경우와 덜 내도 되는 경우를 법으로 규정한 거라, 세금 징수에 대한 정부의 철학을 보여주는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안은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후 발표하는 첫 세법 개정안이라 더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 월급쟁이 감세안 나올 듯… 법인세는 전략 산업만 ‘혜택’ 줄 듯
이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부터 유리지갑인 월급쟁이 감세를 주장해 왔다. 윤석열 정부가 기업이나 초부자에 대한 감세책은 활발하게 펼친 반면, 직장인을 대상으로는 사실상 증세해 왔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직장인의 세 부담을 더는 안을 골자로 하는 세법 개정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먼저 주목할 만한 것은 ‘소득세 물가연동제’다. 지난해 11월 당시 이 대표는 ‘유리지갑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물가는 상승하는데 실질임금은 오르지 않고 명목임금만 올라도 과표가 고정돼 있다 보니 실질적으론 (직장인은) 증세를 강제당하는 결과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근로소득세 물가연동제를 의제로 띄웠다. 하지만 대선 국면에서 국민의힘이 해당 이슈를 선점하면서 민주당의 최종 공약집에선 빠졌다.
대신 이 대통령은 공약에서 ‘직장인 감세’라는 기조를 강조했다. 명분은 생활비 부담 완화다. 그는 ▲월세 세액공제 대상자 소득 기준 상향·대상 주택 범위 확대 ▲자녀 수에 따른 신용카드 소득공제율·공제 한도 상향 ▲자녀세액공제 추가 확대 ▲부부 소득과 자녀 수를 고려한 가족친화적 소득세 체계 개편 등을 공약했다. 이 중 일부가 첫 세법 개정안에 등장할 전망이다.
법인세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최고세율 인하를 부자 감세의 일환으로 규정했다. 그는 성남시장이던 지난 2017년 영업이익 500억원 이상을 내는 대기업에 대해서는 법인세율을 30%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배터리 등의 국가전략산업엔 글로벌 경쟁력을 위한 기술 초격차가 필수라며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했다. 법인세에 대한 입장을 일부 선회한 것이다. 기업 전반이 아닌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한 사업에 한해서만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뜻이다.
이 대통령은 또 국내생산촉진세제를 제시했다. 국내생산촉진세제는 국내에서 최종 생산 및 판매한 기업들에 생산량과 판매량에 비례해 법인세를 공제하는 제도다. 이차전지, 반도체 기업 등의 해외 이탈을 막는다는 점에서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불리기도 한다.
◇ 상속세는 핀셋 감세… 부동산 세금에는 ‘신중’
상속세 역시 최고세율을 낮춰 고소득층에까지 혜택을 주는 안보다는 조건을 제한해 일부에게만 세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 대통령은 올해 초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국민의힘이 현행 50%(경영권 프리미엄 포함 시 60%)인 상속세 최고세율을 40%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자,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은 최고세율 인하로 수십억원을 가진 소수의 자산가만 이익을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 그래도 극심해지는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며 “소수 초부자를 위한 특권 감세,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이번 세법 개정안에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는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중산층의 상속세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데엔 이 대통령도 동의하고 있다. 그는 지난 3월 배우자 상속세에 대한 폐지를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같은 의견을 낸 것이다. 다만 정부가 완전 폐지가 아닌 공제 한도를 기존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상향하는 안을 내놨던 상태다.
부동산 세금의 경우 이 대통령은 기존의 민주당 방식을 따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MBC 라디오에 출연해 “세금으로 집값 잡는 일은 하지 않겠다”며 “공급을 늘려 수요와 공급을 맞추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인 과세는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문재인 정부에서 수요를 억제하는 방법으로 집값을 잡지 못한 것을 반면교사 삼은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는 유지될 것으로 전망하는 경우가 많다. 재초환은 재건축으로 조합원이 1인당 8000만원 이상의 이익을 챙기면 초과 금액의 최대 50%를 환수하는 제도다.
재초환을 폐지하겠다고 한 김 후보와 달리 이 대통령은 공약집에서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로선 재초환은 존치될 가능성이 크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라디오에 출연해 “재건축을 통해서 과도한 이익을 누리는 것은 사회 공공을 위해서 일정하게 환원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