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 공정거래위원회의 인력 충원을 지시하면서, 공정위의 역할이 얼마나 확대될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강조했던 ‘공정경제’ 기조가 실제 행정부 운영에서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지 가늠할 수 있는 첫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8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공정위는 지난 5일 이재명 대통령이 인력 보강 필요성을 언급한 것에 대한 후속 조치 검토에 착수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진행한 첫 국무회의에서 “공정위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며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이 취임 이틀 만에 특정 부처의 조직 보강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한 공정위 출신 로펌 관계자는 “대통령이 지시하면 행정안전부나 기획재정부도 조직 확대에 반대하기 어렵다”며 “업무가 아닌 ‘조직’ 자체를 콕 짚은 지시는 흔치 않다. 공정위와 가깝게 소통 중인 인사가 차기 공정위원장 후보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시는 단순한 사건 적체 해소를 넘어, 공정위를 시장 감시 체계의 중심축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그는 대선 공약에서 플랫폼 규율 강화와 재벌 감시, 중소기업 보호 등을 통해 ‘공정한 시장 질서’ 구현을 약속한 바 있다. 공정위가 주관하는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 제정, 중개수수료 상한제, 입점업체 단체교섭권 보장 등은 모두 이러한 기조의 연장선에 있다.
특히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은 플랫폼 규율을 강화할 핵심 입법 과제로 꼽힌다. 배달앱·모빌리티·이커머스 등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력 남용을 겨냥해 수수료 차별 금지, 협상권 보장 등의 방안이 담길 예정이다. 공정위는 이미 유튜브 프리미엄·뮤직 끼워팔기 혐의, 배달앱 수수료 구조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는 등 관련 감시 역량을 확장해 왔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공정위 조직 개편도 병행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플랫폼 전담 조직인 온라인플랫폼국 신설이나 기존 기업집단국 내 인력 확대 등이 논의될 수 있다. 연간 1000건이 넘는 사건이 접수되는 상황에서 사건 처리 지연은 경쟁당국 신뢰도와 직결된다. 실제 최근 5년간 공정위 사건 처리 평균 기간은 524일에 달한다.
공정위는 문재인 정부에 이어 다시 한번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상조 공정위원장을 앞세워 공정경제·재벌개혁을 추진했다. 이 대통령 역시 경기지사 시절 ‘공정국’을 전국 최초로 신설하며 공정 이슈를 도정 핵심 과제로 삼았다. 당시 그는 배달의민족, 카카오모빌리티, 쿠팡 등 플랫폼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직접 문제 삼았고,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의 배달의민족 인수 당시에는 공정위에 기업결합 불허를 요청한 전례도 있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공정위 내부에서는 온라인플랫폼국 신설 외에 가맹·하도급·유통 등 전통적인 ‘갑을거래’를 전담할 조직을 추가로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관련 업무는 기업결합심사국에 일부 배치돼 있어 전담 기능 확보가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자체 권한 이양 문제도 다시 부상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도지사 시절 가맹·유통·입찰 담합 사건 등의 1차 조사 권한을 지자체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향후 행정 이관 논의가 정책적으로 다시 점화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 예외 확대도 주요 공약 중 하나다. 이 대통령은 중소기업협동조합의 공동사업을 공정거래법상 담합에서 제외하고, 중기중앙회를 중심으로 한 단체협상권 제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쟁을 원칙으로 하는 전통적 시장정책에서 벗어나, 중소기업 간 연대를 ‘상생 협력’으로 인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 시절 논의됐던 협동조합 공동행위 예외 적용을 제도 차원에서 구체화하는 접근으로 경쟁정책의 전환을 의미한다.
재벌 규율 부문에서도 변화가 예고된다. 문재인 정부 당시 ‘재벌 개혁’ 기조 아래 공정위에 기업집단국이 신설됐듯 이 대통령 역시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와 지배력 확장 구조에 대한 집중 점검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특히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내부 거래 등 대기업의 ‘반칙 행위’를 엄단하겠다는 입장을 후보 시절부터 강조해 왔다.
공정위는 그동안 외식업·부동산·건설 분야에서 대기업의 부당 내부 거래를 적발하고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단속해 왔다. 현재도 CJ, 롯데, HDC 등 주요 그룹의 부당 지원 의혹을 조사 중이다. 이 대통령의 정책 방향에 따라 대기업집단 사건 처리에 대한 정책적 우선순위 역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 공약에 포함된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이 실제로 어떤 내용으로 마련되는지가 향후 공정경제 정책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며 “공정과 성장을 양대 축으로 함께 추진하겠다는 방향 자체는 매우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