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가 1990년대 초반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 전후와 닮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가계부채 증가와 고령화 등 직면한 문제에 대응하지 못하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따라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한국은행은 5일 ‘BOK 이슈노트: 일본경제로부터 되새겨볼 교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 작성에는 한은 조사국 물가동향팀 장태윤 과장, 구조분석팀 김남주 팀장 등이 참여했다.

지난 5일 서울 강남·송파구 일대. /연합뉴스

한은에 따르면 우리 경제는 대내적으론 인구 고령화와 부동산 자금쏠림, 대외적으로 국가 간 첨단기술 패권경쟁이 심화와 교역여건 악화라는 문제를 직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성장잠재력이 약화되는 추세다.

한은은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가계부채 증가와 고령화 문제에 직면했던 일본과 유사하다고 진단했다. 부동산 가계부채가 늘어나면서 민간 레버리지 비율은 일본 버블기 최고치(1994년, 214.2%)에 근접했고, 인구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더 빠르다.

통상환경 변화로 수출 성장세가 둔화된 점도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2000년 이후 글로벌 수평분업체계에 적극 참여하면서 대(對)중국·정보통신(IT) 수출 주도로 성장해 왔는데, 글로벌 통상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면서 중국 특수도 사라지고 있다.

한은은 우선 가계부채 누증에 대응해 단계적인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며, 부채가 부실화된다면 신속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한 이후에도 특별한 구조개혁 없이 부동산 자금쏠림 현상이 지속돼 왔다.

저출산·고령화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특히 경력단절여성과 숙련은퇴자, 쉬었음 청년 등 유휴인력 생산참여 확대, 혁신지향적 교육투자 강화 등으로 노동력을 확충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외국인 노동력을 보다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출산율을 단계적으로 제고할 것을 제안했다.

기술 구조개혁도 중요한 과제다. 한국과 일본은 제조업 중심의 수출 성장모델로 성공한 국가다. 하지만 글로벌 통상질서가 변화하고, 중국의 자급률이 제고된 만큼 성공전략을 바꿀 필요가 있다. 한은은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육성과 IT, 의료, 문화콘텐츠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수출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재정·통화정책도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구고령화로 인한 경직적 재정지출 증가는 정부 재정여력을 빠르게 소진시킬 수 있다. 만약 정부가 선제 대응하지 않는다면 재정의 경기대응능력이 저하되고 장기적으로는 국가신인도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장태윤 물가동향팀 과장은 “우리나라는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며 “전통적이든 비전통적이든 통화정책은 경기대응수단이지 경제체질 개선 수단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사회가 구조개혁에 보다 전향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잠재성장률 하락이 이어지고,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으며 통화정책 운용도 보다 제약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