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주요 교역국들의 상호 관세율을 발표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정부에 월령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고정밀 지도 반출, 유전자변형생물체(LMO) 수입 규제 완화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내용들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2025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거론한 사안들이다.

국민 여론이 악화할 수 있는 민감한 이슈여서 오는 3일 대통령 선거 이후 출범할 새 정부의 고민도 커질 전망이다.

1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미측은 지난달 20∼22일(현지 시간) 열린 한미 2차 기술 협의에서 ▲균형 무역 ▲비관세 조치 ▲경제 안보 ▲디지털 교역 ▲원산지 ▲상업적 고려 등 6개 분야에 걸친 개선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미측은 ‘과도한 비관세 조치’의 대표적인 사례로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를 지목했다.

한국 정부는 과거 미국 오바마 행정부와 자유무역협정(FTA)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광우병 파동’ 이후 국민 여론을 고려해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기로 미국 측과 합의했다.

이후 국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한미 FTA 발효 첫해인 2012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은 5억220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22억4300만달러로 330% 증가했다. 전체 대미 수입액에서 쇠고기가 차지하는 비중도 1.2%에서 3.1%로 3배 가까이 늘었다.

2026년부터는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관세가 전면 철폐될 예정이다. 국내 쇠고기 시장에서 미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은 한국이 월령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도록 한 것은 ‘과도기적 조치’라고 보고 있다. 최신 NTE 보고서에서 “(수입 월령 제한이)16년간 유지됐다”고 꼬집기도 했다. 쇠고기 월령과 관계없이 육포, 소시지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도 비관세장벽의 하나로 꼽았다.

디지털 교역 분야에서는 구글이 신청한 5000대 1 축척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 문제가 거론됐다. 구글은 2011년과 2016년 두 차례 지도 반출을 공식 요청했지만, 정부는 군사기지 등 보안시설 정보가 담긴 지도 데이터를 해외 서버에 둘 경우 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현재 국내에서 구글 지도는 2만5000대 1 축척까지만 제공된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실시간 길 안내나 예약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축척 5천대 1 수준의 초정밀 공간 정보는 가상현실(VR), 자율주행 등 첨단 산업의 핵심 정보다. 해당 정보를 활용해 미국의 빅테크 기업이 국내 지도 정보 서비스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당초 지난달 중순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지만, 처리 기한을 한 차례 미룬 상태다. 국외 반출 여부는 새 정부 출범 이후인 8월 중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LMO 농산물 수입 규제 완화도 주요 요구 사항 중 하나로 언급됐다. 정부는 현재 식품용·보건의료용 등의 LMO에 대해 수입 승인 절차를 밟고 있으며, 미승인 LMO의 수입 및 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검역 신고를 강화하고 있다.

2차 기술 협의 당시 미국의 문제 제기에 대해 우리 대표단은 관계부처 협의를 하고 대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기술 협의엔 농림축산식품부에선 사무관급 공무원 한명만 동행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기술 협의에서 양측이 협의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며 “구체적으로 어떤 요구가 있었는지, 또 어떻게 대응했는지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