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5%에서 0.8%로 대폭 낮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발(發) 관세 충격이 해소되지 않았는데 내수 부진도 빠르게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다.
한은은 29일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로 0.8%를 제시했다. 직전 전망인 2월에도 기존 1.9%에서 1.5%로 내렸는데, 3개월 만에 우리 경제가 더 위축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을 통해 “앞으로 내수는 부진이 점차 완화되겠지만 그 속도는 더딜 것”이라며 “수출은 미국 관세 부과 영향 등으로 둔화 폭이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은 이미 지난달에 예고된 바 있다. 지난달 17일 금통위 직후 열린 브리핑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금까지 상호관세, 대(對)중국관세, 품목별 관세, 10% 기본관세 등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나온 것을 보면 2월 성장 전망 시나리오는 너무 낙관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은뿐만 아니라 여러 기관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낮췄다. 지난 14일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0.8%로 대폭 하향했다. 국내 소비심리 회복이 더디고, 건설 부문에서 공사 지연 등 차질이 발생했다는 게 이유였다.
산업연구원 역시 수출 부진 심화와 내수 회복세가 제한적이라며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0%로 낮췄다. 해외 투자은행(IB)도 마찬가지다.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 등 8곳의 평균 전망치는 3월 1.4%에서 지난달 0.8%로 떨어졌다.
해외로 눈을 돌려봐도 우리나라의 경제 위축은 도드라진다. 21일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로 2.7%를 제시했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0.8%)보다 1.9%p 높다. 이 같은 격차는 2021년(1.8%p), 2022년(0.5%p), 2023년(1.4%p), 2024년(0.7%p)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내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기존 1.8%에서 1.6%로 내렸다. 금통위는 “향후 성장 경로에는 무역 협상 전개 상황, 정부 경기 부양책, 주요국 통화정책 방향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기존 1.9%를 유지했는데, 내년 전망치는 기존 1.9%에서 1.8%로 낮췄다. 금통위는 “물가상승률은 가공식품 및 서비스 가격 인상 등의 상방 압력을 국제 유가 하락, 낮은 수요 압력 등이 상쇄하면서 2% 내외의 안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