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법원의 판결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이 취소되면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이 0.9%를 넘을 수 있다고 한국은행이 전망했다. 다만 상호관세가 취소돼도 품목별·기본 관세는 남아 있어 성장률 상승 폭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29일 오후 한은 본관에서 열린 ‘수정경제전망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연방법원의 상호관세 무효 판결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칠 영향이 어떻게 되나”라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밝혔다.
한은은 이날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1.5%)보다 낮은 0.8%로 예상한 바 있다. 다만 미국의 관세율이 상당폭 인하되는 낙관 시나리오에서는 성장률이 올해 0.1%포인트, 내년엔 0.2%포인트 더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김 부총재보의 발언은 상호관세가 철폐되면 낙관시나리오보다도 성장률이 더 개선될 수 있다는 뜻이다. 김 부총재보는 “상호관세가 철회될 경우 낙관 시나리오와 유사하거나 좀 더 좋은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면서 “추후 상황을 지켜본 뒤 전망에 반영할 것”이라고 했다.
관세 철폐가 성장률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이유는 한은이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을 낮춘 가장 큰 원인이 미국의 관세정책이기 때문이다. 한은은 지난 2월 전망에서 한국산 제품에 대한 평균 관세율을 5~10%로 반영했는데, 5월 전망에서는 13~15%로 높였다. 그런데 이번 판결로 인해 상호관세가 사라지면 평균 관세율은 9.7%로 낮아진다.
이와 관련해 이지호 조사국장은 “관세 철폐는 직·간접적인 경로로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심리적인 불확실성 해소를 비롯해 미중 관계 개선이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도 있어 다양한 영향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이날 연방국제통상법원 재판부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일 부과한 상호관세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법원의 명령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이내에 법원의 판결을 반영한 새 행정명령을 발표해야 하며, 고율의 상호관세는 이 행정명령 발표 직후부터 무효가 된다.
한은은 또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편성되면 성장률이 더 개선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웅 부총재보는 “13조8000억원 규모 1차 추경은 전망에 반영됐지만, 2차 추경에 대해서는 시나리오 분석도 하지 않았고 전망에도 반영하지 않았다”면서 “2차 추경이 추진된다면 성장률을 올리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한은은 세부 추진 사업에 따라 추경의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이지호 국장은 “실질 집행이 어떤 방향으로 되는지에 따라서 성장률 상승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면서 “또 새 정부가 2차 추경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본격적인 집행은 늦어질 수 있어 올해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은은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건설업을 지원하는 정책은 장기적인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이지호 국장은 “경기 부양 목적 외에 필요하지 않은 시멘트 덩어리를 짓는 게 우리나라가 성장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라면서 “인공지능(AI) 발전소 등 우리나라의 장기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인프라를 확충하는 방향으로 건설경기 부양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