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불지핀 원화 스테이블코인 활성화 논의가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간 권한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가상자산 관리 권한을 보유한 금융위가 입법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감독체계를 명문화하려는 가운데, 통화당국인 한은은 통화 정책에 미칠 파급력을 이유로 견제에 나선 모습이다.

◇ 한은 “인가 단계부터 통화당국이 권한 가져야”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디지털자산기본법 1호 법안 초안에는 스테이블코인 발행 인가 권한을 한은이 아닌 금융위원회에 부여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간 불분명했던 관리 주체를 금융위로 명문화하려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제도화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차 가상자산위원회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법안 구상에는 금융위의 의지가 짙게 배어 있다. 금융위는 작년 11월부터 김소영 전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민·관 법정 자문기구 ‘가상자산위원회’를 운영하며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디지털 자산 입법 논의를 이끌어왔다. 최근에는 가상자산 제2단계 입법 절차에 나서는 등 규율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위가 체계 마련에 열심인 이유는 스테이블코인이 금융안정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스테이블코인이 전자화폐와 같은 지급수단으로 사용되면 은행 예금을 대체해 은행의 자금중개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제도권 내에서 안전하게 통제될 수 있도록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다만 이 같은 움직임에 통화당국인 한은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관리 체계에서 한은이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원화와 같은 법정통화와 1:1로 연동되는 구조인 만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은은 관리 권한의 중심에 자신들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예상치 못한 충격이 발생해 가치가 불안정해진다면 상환 요구가 발생하며 법정 화폐의 가치가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한 민간 발행자가 상환 요청에 대응하지 못하면 금융기관이나 결제 시스템에 유동성 압박이 가해진다. 이는 단기적으로 시장 금리 상승과 유동성 경색 등으로 이어져 환율 및 통화정책 운용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고경철 한은 전자금융팀장은 한은 별관에서 열린 한국금융법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해 “스테이블코인은 통화정책, 금융안정, 지급결제 등 중앙은행의 정책 수행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면서 “발행자 진입 규제와 관련해 인가 단계에서 중앙은행에 실질적인 법적 권한이 부여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美·EU·英도 중앙은행에 감독권 등 부여

이 같은 입장은 주요국 중앙은행도 궤를 같이 한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스테이블코인을 ‘은행 예금의 디지털 형태’로 간주하며 연준의 승인 없이 발행돼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수 차례 밝힌 바 있다. 연준은 관련 법안에 대해 의회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빗썸라운지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뉴스1

유럽중앙은행(ECB)도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023년 6월 발효된 암호자산시장법(MiCa, 미카)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이 통화정책과 금융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ECB가 판단하면 인가를 거부하거나 인가 취소를 요구할 수 있다.

영란은행은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디지털결제자산(DSA)에 대해 감독 및 규제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영란은행은 자본 요건과 준비금, 백업 자산 요건 등을 설정할 수 있으며, 운영자와 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규칙 제정과 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 시스템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발행·감독 권한만 금융감독청(FCA)이 보유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은 법화를 대체할 수 있어 통화주권을 위협하는 한편 통화정책의 유효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중앙은행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분야”라면서 “한은이 권한을 독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중앙은행 차원에서 들여다볼 부분을 인가 단계에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스테이블코인을 관리에 있어 한은과 금융위의 공동 역할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최재원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은 금융안정성과 더불어 통화 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자산인 만큼, 금융위와 한은이 함께 관리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금융위가 스테이블코인 관리를 주도하되 한은이 모니터링을 통해 시장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