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불안과 미국발(發) 관세 쇼크로 국내 투자 불씨가 사그라들고 있다. 올해 1분기 총고정자본형성 금액은 외부활동이 제한됐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직후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 부진으로 경제 성장에 대한 투자의 기여도도 6년여 만에 가장 악화됐다.

총고정자본형성이란 한 나라의 경제 주체들이 일정 기간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 중 소비하지 않고 투자에 사용한 금액을 말한다. 한 나라의 정부와 민간에서 집행한 유·무형 투자를 합쳐 집계되며, 건설투자와 설비투자, 지식재산생산물투자로 구성된다.

◇ 1분기 국내투자 4.1% 줄어… 5년 전으로 회귀

17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총고정자본형성 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4.1% 감소한 147조461억원(2020년 가격 기준, 원계열)으로 집계됐다. 금액 기준으로는 2020년 1분기(143조4024억원)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며, 감소 폭은 2019년 1분기(-7.3%) 이후 가장 크다.

그래픽=정서희

경제 성장에 대한 투자의 기여도도 급감했다. 올해 1분기 총고정자본형성은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0.1%, 전년 동기 대비)을 1.2%포인트(p) 끌어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총고정자본형성의 GDP 성장 기여도는 작년 2분기(-0.3%p)부터 4분기(-0.6%p)까지 악화되다가 올해 1분기 1%p를 넘겼다. 2019년 1분기 이후 최악의 실적이다.

항목별로 보면 건설투자가 급감하면서 전체 총고정자본형성 감소를 주도했다. 올해 1분기 건설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12.2% 급감한 56조6424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외환위기 시기였던 1998년 4분기(-17.7%)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GDP 성장에 대한 건설투자 기여도는 -1.5%p를 기록했다. 이 또한 1998년 4분기(-3.8%p) 이후 가장 부진한 수치다.

이는 주요 선진국에서 투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10년간 2020년(-3.0%)을 제외하고 총고정자본형성이 매년 증가했고, 일본은 2020년(-3.6%)부터 3년간 감소했지만 2023년(+1.8%) 증가 전환됐다. 성장률이 정체되고 있는 유럽연합(EU)도 2020년(-5.7%)만 감소하고 나머지는 증가했다.

문제는 투자가 감소하는 가운데 기업 자금마저 대거 유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로 빠져나간 투자자금은 465억9400만달러로 집계되면서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80년 이후 역대 5위를 기록했다. 투자자금 순유출액은 내국인 해외직접투자(ODI)에서 외국인 국내직접투자(FDI)를 뺀 값이다.

◇ 투자 위축, ‘장기 불황’ 신호탄… “추경·금리인하 시급"

전문가들은 총고정자본형성 감소가 작년 비상계엄 이후 대내외 불확실성이 심화된 데 따른 것으로 분석한다. 석병훈 이화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계엄과 조기 대선으로 인한 정국 불안이 기업의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면서 “관세 문제로 순수출까지 둔화하면서 설비투자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건설투자 부진은 예상보다 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설비투자는 수출 사이클에 연동되는 측면이 있어 투자 감소가 예상됐지만, 건설투자는 비교적 낙폭이 컸다”면서 “지난 13년간 정부의 성장 정책이 부동산 경기 부양에 치중되면서 발생했던 과잉 투자가 조정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난 2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뉴스1

문제는 투자 부진이 계속되면 장기적인 성장률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석 교수는 “자본투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생산요소가 적어진다는 의미”라면서 “이는 저성장 기조를 고착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 연구원도 “소비와 투자가 모두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내수 성장 동력이 많이 약해진 상황”이라면서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장기 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재정·통화 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편성해 내수를 부양하고, 장기적으로는 반도체 등 유망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늘려야 한다”면서 “이 과정에 생산성이 낮은 부동산 시장으로 정부 재정이 흘러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석 교수는 “투자를 활성화하려면 고(高)금리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금리 인하 속도를 높여 기업들의 이자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했다. 석 교수는 또 “특히 추경 편성 과정에 국채 발행량이 늘어 시중 금리가 오를 경우에 대비해 금리 인하가 빨리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국채 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여 국채 공급 증가로 가격이 떨어지면 금리는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