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연공서열 개편 없이 정년 연장을 진행하면 많은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지난 15일 세종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초고령사회 빈곤과 노동: 정책 방향을 묻다’를 주제로 열린 공동 심포지엄에서 “연공서열제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고령 노동 수요 부족, 청년 일자리 축소 등 문제가 생긴다”며 “연공서열제를 바꾸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5일 오후 세종시 반곡동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열린 '초고령사회의 빈곤과 노동:정책 방향을 묻다' 주제로 열린 KDI-한국은행 공동 심포지엄에 참석, 환영사를 하고 있다./뉴스1

그는 “젊은 층과 고령층의 임금 차이가 크면 생산성을 임금에 반영하기 어렵고, 고령층을 채용하기도 어려워진다”며 “한국은행 조사 결과, 고령층이 퇴직 후 임금의 60%만 받아도 자영업자로 일하는 것보다 소득이 높기 때문에 임금이 다소 하락하더라도 일하려는 수요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고령층의 소득 수단인 연금 수급과 정년 사이의 공백으로 ‘노후 빈곤’ 우려가 있다”며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일괄적인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 위축, 고령층 정규직 채용 기피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KDI에 따르면,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60세 정년이 의무화됐을 때 고령층 5명 중 3명은 고용 연장 효과를 봤으나, 청년 1명의 일자리가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또한 대기업, 제조업 분야를 중심으로 신규 채용 축소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대다수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를 위해 고령층 노동력을 적극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며 “단순한 정년 연장이 아니라, 연공서열 체계를 개편해야 고령 인력 활용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한요셉 KDI 노동시장연구팀장은 “‘욜드(young과 old의 합성어)’로 불리는 젊은 고령층은 과거보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학력 수준도 높다”며 “이들을 잘 활용하면 생산 가능 인구 감소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상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젊은 고령층이 생산적인 활동을 하려면 노동시장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팀장은 “고용주가 고령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려고 해도 고임금 구조와 고용 보호 제도 등으로 부담이 커서 수요가 많지 않을 수 있다”며 “이와 함께 청년 일자리를 줄일 수도 있다”고 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과 고용시장 구조가 유사한 일본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일본은 2021년 개정된 고령자고용안정법을 시행해, 기업이 70세까지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모든 기업은 정년 연장, 정년 폐지, 계속고용제도 도입, 위탁계약 등 다양한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해 고령자 고용을 지속할 수 있다. 이 중 가장 널리 쓰이는 방식은 ‘퇴직 후 재고용’으로 알려져 있다.

한 팀장은 “일본 방식은 우리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고, 논의 가능한 대안”이라며 “고령 근로자에게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호 한국은행 조사국 거시분석팀 차장도 “고령층의 과도한 자영업 진입을 완화하려면, 이들이 안정적인 임금 일자리에서 장기간 근무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 분석 결과 60~64세 근로자가 상용직에 잔류할 경우, 정년전 소득의 60%만 받더라도, 자영업 소득보다는 높은 편이다./ 한국은행

그는 “고령 근로자가 퇴직 전 임금의 60%만 받더라도 자영업자로 버는 수입(중앙값)보다 높은 수준으로, 60세 이후에도 일할 수 있다면 소득이 줄더라도 임금 일자리를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편, 고령 노동자 확대를 위해 연공서열 개편뿐만 아니라 플랫폼 구축, 직업교육 확대 등 다각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엄상민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령 노동자들에게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직업 탐색 과정과 함께 투명한 임금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 노동 관련 플랫폼을 활성화하고, 지역 연계 일자리 매칭 프로그램 등 산업 기반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