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주요 후보들이 잇따라 세제 개편 공약을 내놓고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직장인과 중산층을 겨냥한 소득세 감세 방안을 내세웠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방교부세 확대와 통신비·사교육비 세액공제 등 다양한 세제 혜택을 약속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법인세 일부를 지방세로 전환해 지방자치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준석 후보의 공약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존에 논의된 내용이 많다며 신선함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다만 법인세를 지방세로 전환하겠다는 이 후보의 방안에 대해선 “합리성과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울러 세 후보 모두 세금 감면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이에 따른 세수 감소에 대한 대책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이재명 후보, 월세·통신비·교육비까지 전방위 감세 공약
15일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는 대대적인 세제 혜택 공약을 발표했다. 이 후보는 먼저, 국가첨단전략산업에 투자하는 개인과 기업에 대해 소득세와 법인세를 감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주력 제조업 강화를 위한 ‘전략산업 국내생산 촉진세제’ 도입도 함께 추진한다.
이 후보는 지방균형 발전을 위해 지방교부세 확대를 공약했고, 서민을 위한 월세·통신비 세액공제 확대도 약속했다. 또 저출산·고령화 대응 차원에서 자녀 수에 비례한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상한선 상향, 초등학생 예체능·체육시설 이용료의 교육비 세액공제 포함 등도 제시했다.
이 후보가 발표한 공약 중 초등학생 교육비 세액공제, 통신비 세액공제는 국회에서 거론됐으나, 기획재정부가 반대 목소리를 낸 주제다. 기재부는 앞서 초등학생 교육비 세액공제를 추진할 경우 정부가 사교육을 부추길 수 있고 조세 감면 혜택이 고소득층에 집중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실제로, 2023년 기준 월평균 소득이 800만원 이상인 가구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67만원으로, 소득 300만원 이하 가구(18만원)의 3배 이상이었다. 통신비 세액공제 역시 1조원 이상의 세수 손실과 다른 항목과의 형평성 문제로 기재부가 반대한 바 있다.
자녀 수에 비례한 신용카드 소득공제율·공제 상한 한도 상향 추진 공약도 재정에는 부담이 된다. 1999년 시작된 조세특례제도인 신용카드 세액공제는 앞선 심층평가에서 번번히 장기적 축소·폐지·제도 재설계 의견을 받았으나 직장인들의 반발로 폐지를 못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해당 공제로 인한 감면액은 4조1000억원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 김문수, “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전문가 “시기상조”
김문수 후보는 종합소득세에 물가연동제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종합소득세 물가연동제는 물가 상승에 따라 과세표준, 세율, 공제 기준 등을 자동 조정하는 제도로, OECD 38개국 중 22개국이 채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도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한국의 소득세 체계 정상화가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근로소득자 중 면세자 비율은 2022년 기준 33.6%로, 영국(5.9%), 캐나다(10.1%), 호주(12.6%)보다 높은 편이다. 이처럼 면세자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감세만 계속해서 적용되면 세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물가연동제를 적용하면 향후 5년 동안 약 30조원 넘는 세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기재부도 물가연동제를 도입할 경우, 고소득자가 내는 세금은 감소하고, 면세자 비율이 높아질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소득세 최저세율은 6%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고, 전체 세수 중 소득세 비중도 그리 높지 않은 편”이라며 “종합소득세의 실질적 세 부담 증가는 사실상 ‘소리 없는 증세’ 역할을 하며 소득세 구조를 정상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성명재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도 지난해 “당장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하기에는 공제 조정과 면세자 비율 조정 등 합의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며 “최소 5년, 길게는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실질적 면세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문수 후보는 10대 공약에 16년간 유지돼 온 소득세 기본공제액(1인당 150만 원)을 300만원으로 상향하는 안과, 윤석열 정부가 추진했던 상속세 개편도 공약에 포함했다. 주요 내용은 ▲부부 간 상속세 폐지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 ▲최고세율 50%→30% 인하 ▲최대주주 할증제도 폐지 ▲가업 상속 시 자본이득세 방식 도입 등이다. 유산취득세 전환만으로도 약 2조원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
◇ 이준석 “법인세 30%, 지방세로 전환”…전문가들 “중앙정부 재정악화 우려”
이준석 후보는 지자체의 재정 자율성을 강화하겠다며, 법인세의 30%를 지방세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각 지자체가 법인지방소득세를 자율적으로 결정·운용하게 해 지역 간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앙정부조차 재정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방정부에 법인세를 떼어주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평가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이미 지방소비세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세율을 조정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라며 “법인세 전환 공약은 추진 방식도 이상하고, 해야 할 근거도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도 “법인세의 30%를 지방으로 이전하자는 방안은 과도하다”며 “지방에 부가가치세 일부가 이미 배분되고 있는 상황에서 법인세까지 떼주면 중앙정부 재정이 심각하게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감세만 있고, 세수 보전 대책은 실종
세 후보의 공통점은 감세 공약만 잇달아 내놓고, 줄어든 세수를 메울 구체적 대책은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근 2년간 87조 원의 세수 부족이 발생한 데 이어 올해도 세계 경기 침체 여파로 세수 결손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지만, 대안이 없는 셈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50%에 육박하고 있는 가운데, 향후 재정 건전성 악화는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문수 후보는 10대 공약에서 소득세 및 상속세 감세 정책을 발표하며 “재정 소요가 없으며, 세제 개편 및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성장으로 세수를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후보는 ‘정부 재정 지출 구조 조정과 2025~2030 연간 총수입 증가분 등으로 충당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준석 후보는 “별도 재정 투입 없이 운영이 가능하다”고 밝혔지만, 중앙정부 세수 감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오문성 교수는 “대권 주자들이 표심 때문에 증세나 세수 확보 방안을 언급하기 어렵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구체적 대책은 필요하다”며 “대선 후보들이 국가 재정을 고려한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