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금리 인하 기대감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 불확실성이 맞물리면서 외국인이 우리나라 국채선물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 지난달에는 외국인의 순매수 규모가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금리 인하 사이클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외국인의 국채선물 매수세가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채선물은 일정 시점에 정해진 가격으로 국채를 사고팔기로 약정하는 파생상품이다. 국채 금리 하락이 예상되면(국채 가격은 상승) 국채선물을 매수하고, 금리 상승이 전망되면(가격은 하락) 국채선물을 매도하는 구조다. 외국인이 국채선물을 순매수했다는 것은 금리 하락을 예상한 투자자가 더 많았다는 뜻이다.

◇ 外人 국채선물 ‘폭풍쇼핑’… 3년·10년 순매수 ‘역대최대’

1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외국인은 3년 만기 국채선물을 21만4313계약 순매수했다. 금융투자기관(10만6549계약 순매도)과 투자신탁(4만9509계약 순매도), 연기금(2만347계약 순매도), 은행(3만1620계약 순매도) 등이 일제히 선물을 매도할 때 나홀로 ‘폭풍쇼핑’에 나선 것이다.

그래픽=정서희

이는 기재부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6년 1월 이후 월별 기준 최고치다. 종전 최고치인 작년 6월(14만6698계약 순매수)과 비교해도 거래량이 45% 이상 증가했다. 거래량이 급증하면서 지난달 순매수 거래대금도 23조원을 돌파,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거래대금은 시장에서 실시간으로 결정되는 선물가격(백분율)에 계약단위(1억원)와 총 거래량을 곱해 구한다.

일별로 들여다보면 외국인의 국채선물 매수세는 더욱 뚜렷하다. 지난달 외국인은 단 4거래일(14일, 22일, 23일, 24일)만 제외하고 매일 순매수를 이어갔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이 인용된 지난달 4일에는 4만2353계약(4조5433억원)을 순매수하면서 신기록을 썼다. 연초 이후 하루 순매수 규모가 대체로 1만 계약, 금액이 1조원 안팎에 머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상승세다.

장기 금리를 반영하는 10년 만기 국채선물도 순매수 추세다. 외국인은 지난달 해당 종목에서도 10만2523계약(12조3397억원)을 순매수하면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일별로 보면 3거래일(8일, 9일 11일)을 제외한 모든 거래일에 순매수세가 지속됐고, 4일에는 1만7241계약(2조673억원) 순매수로 일간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외국인의 매수세는 국채선물 가격에도 반영됐다. 한국거래소(KRX)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3년 국채선물(6월 만기) 종가는 올해 3월 26일 106.74에서 지난달 말 107.86으로 치솟았다. 지난 12일 기준으로는 소폭 내리면서 107.66에 마감했다.

◇ 韓 성장 부진·美 자금 이탈에 국채선물 매력도 ‘쑥’

시장에서는 한은이 인하 금리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외국인의 ‘인하 베팅’이 강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은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했지만, 금통위원 전원이 3개월 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5월 인하 기대감을 키웠다. 이창용 한은 총재 또한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차 방문한 밀라노에서 “금리 인하를 의심하지 말라”고 언급하며 보조를 맞췄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월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개회를 선언하는 의사봉을 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3일 공개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기대비 0.2% 감소하며 역성장한 것도 금리 인하 기대감에 불을 지폈다. 이는 한은이 지난 2월에 제시한 1분기 성장률 전망치(+0.2%)보다 0.4%포인트(p) 낮은 수치다. 이 발표 이후 해외 투자은행(IB)들은 올해 우리나라 연간 성장률이 0%대로 고꾸라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1분기 성장률이 안좋게 나오면서 시장에서 경기 둔화 우려가 확대됐다”면서 “기준금리 인하 기대도 커지면서 외국인의 국채선물 매수세도 거세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도 “경제 성장률이 낮게 유지되는 흐름에서는 금리 하락에 베팅하는 국채선물 매수가 늘어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 불확실성으로 미국 자산에서 이탈한 글로벌 자금이 한국 국채선물 시장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11일(현지 시각)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4.48%로 마감하면서 올해 2월 20일(4.50%)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금리는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므로, 이는 미국채를 대거 매도됐다는 의미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미국 자산이 매도되는 가운데 외국인 자금이 한국 국채 현물과 선물 모두에 유입됐다”면서 “미국이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와중에도 한국은 금리 인하 기조가 유지되고 있어 원화 채권 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현물은 중국계 투자자들이, 선물은 싱가폴·홍콩 소재 헤지펀드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