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통상 협상 소식으로 대만의 통화가치가 급등한 가운데 원화도 덩달아 절상되고 있다. 원화는 대만 통화의 환 헤지 수단으로 사용돼 대만 달러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시장에서는 조기대선과 한미 통상 협상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는 하반기에는 환율이 1330원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7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보다 25.3원 급락한 1380원에 출발했다. 환율이 주간 거래에서 1400원을 밑돈 것은 비상계엄 직전인 작년 12월 2일(1396.0원) 이후 처음이다. 환율 시가 기준으로는 작년 11월 6일(1374.0원) 이후 반년 만에 가장 낮다.

◇ 대만통화 절상에 원화 1380원대로 ‘뚝’

미국과 대만의 무역협상에서 환율이 논의됐다는 루머가 번지면서 환헤지(hedge·환율 변동 위험을 없애는 거래) 수요가 급증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대만 당국은 지난 3일 성명서를 통해 미국과의 일차적인 무역협상이 1일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이에 시장에서는 대만 당국이 통화 절상을 용인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7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통상 환 헤지는 자국 통화를 통해 이뤄진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대만 달러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만 투자자가 미국 달러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치자. 이 투자자는 달러 가치가 더 하락하기 전에 현재 가격으로 달러를 매도하고 대만 달러를 매수하는 선물환 계약을 체결해 환 위험을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대만 달러처럼 거래량이 적은 통화는 원하는 규모로 선물환 계약을 체결하기가 쉽지 않다. 이 경우 자국 통화와 비슷하게 움직이면서 유동성이 풍부한 통화를 사용해 환 위험을 완화한다. 원화는 대만 달러와 상관관계가 높고 거래 규모도 크기 때문에 대만 투자자들이 대리 헤지(proxy hedge) 수단으로 자주 사용하는 통화다. 이 때문에 대만 달러 수요가 늘면 원화도 함께 강세를 보이게 된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달러 약세 가능성에 대만 생명보험사들을 중심으로 환 헤지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면서 “대만도 우리나라처럼 고령화 속도가 빨라 생보사들이 많은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23년 기준 대만 생보사들은 약 23조 대만달러(미화 약 7621억달러) 규모의 자산 중 대부분을 미국 채권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중국이 이번주 중 스위스에서 만나 첫 공식 대화에 나서기로 한 점도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두 고래(미국과 중국)의 데이트 소식이 아시아 통화 강세를 자극하고 있다”면서 “수출업체의 추격 매도와 역외 숏(달러 매도) 플레이는 환율 상단을 무겁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 한미 협상 진전시 추가 절상… “1330대도 가능”

시장에서는 그간 원화 가치를 짓누르던 요인들이 완화되면서 반등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한국 간 관세협상에서도 환율 문제가 거론된 만큼, 협상 진전에 따라 외환당국도 원화 절상을 용인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번지고 있다. 원화 강세가 지속된다면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순매도 압력이 약화돼 원화 수요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최상목(왼쪽에서 2번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각) 재무부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에서 악수를 하며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최 부총리, 베선트 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기획재정부 제공

전문가 대다수는 환율이 1300원대 중반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예상한다. 조용구 연구원은 “최근 환율이 40원 정도 급락했지만 달러 약세와 국내 경기 펀더멘털(기초체력) 등을 감안하면 더 내려갈 여지가 있다고 생각된다”면서 “4분기 중 환율이 1360원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주원 대신증권 연구원도 “환율이 1300원 중반을 향하는 하향안정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환율 급락에 따라 국내 기업들과 기관들의 달러 투매가 나올 수 있어 추가 하락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상반기 중 달러 약세 국면이 유지될 공산도 커 하향 안정화 흐름은 유효하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1300원대 초반을 예상하는 전문가도 있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대외 약달러와 경상흑자에 따른 달러 공급 증가로 환율이 1330원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예상하면서 “한국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환율이 핵심 의제로 포함된 만큼 시장에서는 추가 하락 베팅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