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없이 오직 구두로 외주용역을 쓴 국내 주요 엔터테인먼트 5개사(하이브·SM·YG·JYP·스타쉽)부터 국내 제조사들에 자사의 제품만 쓰게 했다는 혐의를 받는 브로드컴까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과태료를 부과 받기 전 ‘동의의결’로 선회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동의의결은 쉽게 말하면 법을 위반했어도 반성문을 쓰고 스스로 잘못을 시정하면 봐주는 제도다. 일각에서는 기업 봐주기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장기간 행정 소송 등을 하지 않아도 되고, 사건을 이른 시일 내에 종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공정위도 내심 동의의결을 반기는 분위기다.

그래픽=정서희

28일 공정위에 따르면 올해 동의의결을 신청한 후 자구안의 타당성을 인정받아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 단계를 밟은 건수는 3건(엔터테인먼트 5개사·카카오·브로드컴)이다.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4년부터 매년 0~2건에 불과했는데, 올해 4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벌써 평년보다 많은 기업이 이 절차를 밟은 것이다. 이 밖에 ‘유튜브 뮤직 강매’ 의혹으로 조사를 받은 구글도 동의의결을 신청한 상태다.

동의의결이란 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는 사업자가 스스로 소비자의 피해를 구제하는 등 타당한 대책을 내놨을 때, 공정위가 징계를 내리지 않는 제도다. 시정 명령과 과징금 등 기존 조치의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다.

동의의결을 원하는 기업이 늘기도 했지만, 공정위도 최근 동의의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분위기다. 지난 24일 공정위는 제때 상품을 납품하지 않은 업체에 과도하게 자체 벌금을 청구한 편의점 4사(GS25·CU·세븐일레븐·이마트24)의 동의의결안을 확정했다. 동의의결안에 따르면 편의점 4사는 미납액의 20~30% 수준이었던 벌금을 대형마트 수준인 6~10%로 낮추고, 납품업체 지원하기 위한 자금 30억원을 내놓기로 했다.

동의의결은 우선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작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공정거래법 관련 소송에서 공정위의 승소율은 90% 내외다. 그러나 최근 2심에서 608억원의 과징금 중 243억원만 인정받은 호반건설 일감몰아주기 사건에서 보듯, 소송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이 외에도 계열사 부당지원 혐의로 과징금 647억원을 받은 SPC그룹, 최저가 정책의 손실을 납품업체에 떠넘겼다며 32억9700만원의 과징금을 받은 쿠팡 등은 지난해 대법원에서 공정위를 상대로 승소했다. 과징금을 돌려주는 경우 국가는 원금에 연 3.5% 이자까지 물어야 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업이 공정위의 제재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하면 위법 상태가 장기화될 수 있다”며 “가급적 신속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여러 나라에서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들을 고려할 때도 동의의결은 이점이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나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등에도 함께 회부된 사건이라면 공정위는 해외 경쟁당국이 내릴 제재 수위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동의의결은 기업이 직접 자구안을 마련한 거라 이 문제에서 자유롭다.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전경/뉴스1

그렇다고 모든 기업이 동의의결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공정위가 사업자의 소비자 피해 구제·원상회복 등의 방안이 마땅하다고 인정했을 경우만 가능하다. 보여주기식의 반성문을 제출하면 공정위가 퇴짜를 놓을 수 있다는 얘기다.

카카오모빌리티가 대표적인 사례다. 2023년 카카오모빌리티는 경쟁사 호출 서비스에 가입한 택시의 콜(승객 호출)을 차단했다는 혐의로 공정위의 조사를 받았다. 이에 카카오모빌리티는 경쟁사인 우티 택시 기사에게도 일반 호출을 제공하고 콜 차단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동의의결 개시를 신청했으나 공정위는 이를 기각했다. 결국 카카오모빌리티는 과징금 151억원을 부과받았다.

법 위반이 명백하고 과징금이 수천억원 예상되는 건에 대해서도 공정위는 동의의결 절차를 진행하지 않는다. 공정위 관계자는 “중대하고 명백한 위반 행위 등 (검찰) 고발 요건에 해당하면 동의의결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편 최근 구글도 ‘유튜브 뮤직 강매’ 의혹에 공정위에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공정위는 구글이 광고 없이 동영상을 보는 서비스인 유튜브 프리미엄을 팔면서 유튜브 뮤직 이용권을 끼워팔면서 시장 점유율을 높였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구글과 동의의결을 협의 중”이라며 시장이 절차가 개시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