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계좌에서 발생하는 ‘이중과세’ 문제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와 달리 해결되지 못하고 해를 넘길 전망이다. ISA는 오는 하반기부터 이중과세가 발생하지 않는데, 연금계좌 투자자는 올해 말까지도 해외 배당금에 대한 세금을 현지와 한국에 동시에 낼 가능성이 크다.
법 개정이 늦어지면 이중으로 세금을 내는 기간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법 시행이 늦어질 경우 이중으로 과세된 금액을 돌려주는 안을 고려하고 있다.
24일 재정당국에 따르면 기재부는 연금계좌에서 발생하는 이중과세를 해소하기 위한 세법 개정안을 연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하면 법 시행은 일러야 내년 1월 1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당 간 갈등으로 국회가 파행되면 시행 시점은 그 이후로 넘어갈 수 있다.
현재 연금계좌에 미국 상장지수펀드(ETF) 등 해외 펀드를 담은 투자자는 해당 국가에 배당소득세를 낸다. 연금을 인출하려면 우리 국세청에 3.3~5.5%의 연금소득세를 또 납부한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현지에 낸 배당소득세를 국세청이 보전해 준 덕분에 이 같은 이중과세 논란이 벌어지지 않았다. 미국 ETF에 투자해 100만원의 배당소득이 생긴 경우, 미국은 배당소득세율이 15%라 계좌에 85만원만 입금돼야 했다. 그러나 국세청이 미국에 낸 세금 만큼을 채워 100만원을 만들어주고, 연금을 수령할 때 한 번만 세금을 징수했다. 덕분에 투자자는 85만원이 아닌 100만원의 자금을 굴리며 납세 이연 효과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국고 지원이 과하다는 이유로 기재부가 올해부터 바뀐 외국납부세액 공제 방식을 적용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바뀐 방식은 국세청의 대납 단계를 없애는 게 핵심이다. 결국 올해 초부터 투자자는 현지와 국내, 양쪽으로 세금을 내게 됐다. 다시 법을 개정해 이중과세 논란을 돌파하겠다는 게 기재부의 계획인데, 시행이 늦게 될수록 투자자로선 안 내도 낼 돈을 내는 거라 손해다.
때문에 기재부는 ‘소급 적용’을 해줄지를 들여다 보고 있다. 개정법이 내년 또는 내후년에 시행되더라도 그 전에 발생한 이중과세 금액을 추정해 투자자에게 돌려줄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소급 적용이 흔치 않지만 사례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7월 기재부는 혼인신고한 부부에게 최대 100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결혼세액공제를 신설하면서 이를 소급 적용했다. 원래라면 올해 1월에 혼인신고한 부부가 혜택 대상이었다. 하지만 기재부는 예비 부부가 혼인신고를 미루는 것을 막기 위해 제도 설계 전인 2024년 상반기는 물론 하반기까지 대상 범위를 넓힌 바 있다.
법 개정의 구체적인 방향은 ISA와 비슷하다. 지난 1월 기재부는 ISA 투자자가 만기 때 내야 할 세금에서 그가 이미 외국에 납부한 만큼은 빼고 징수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마다 배당소득세가 다른 데다 계좌 내 거래가 활발해 투자자별로 외국에 납부한 세액을 정확하게 판별할 수 없어 일괄 14%를 적용하기로 했다. 투자자가 배당소득세로 현지에 얼마를 냈든 14%를 세금으로 냈다고 보겠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투자자가 가장 많이 투자하는 미국의 배당소득세율은 15%, 중국과 일본은 10%다.
일각에선 연금계좌가 ISA보다 최고 3분의 1가량 세율이 낮은 만큼 동일한 공제율을 적용할 수 없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공제율이 낮으면 외국에 납부된 세금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거라 투자자에겐 날벼락이다. 기재부는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연금계좌에도 ISA와 동일한 14%의 공제율을 적용하는 것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한편 ISA 이중과세 논란은 어느 정도 진화된 상태다. ISA 관련 규정은 국회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법이 아니라 기재부가 시행령만 고치면 되기 때문이다. 바뀐 시행령은 7월 1일 이후에 발생하는 외국 배당소득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다만 이중과세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과세 이연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국세청이 투자자가 낸 외국 배당소득세를 채워주는 과정이 사라지는 건 그대로라서다. 올해부터는 배당소득세를 뺀 금액만 운용할 수 있게 되면서 과세 이연 혜택도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