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회사채 시장이 다시 긴장감에 휩싸이고 있다. 2분기 중 23조 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는 가운데, 최근 미국의 상호관세 조치 발표 이후 신용 스프레드가 다시 확대되고 있어서다. 신용 스프레드의 확대는 곧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 상승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기업들의 이자 부담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2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고채 3년물과 AA- 등급 회사채(3년, 무보증) 간 금리 격차는 지난 21일 기준 0.59%포인트(p)를 기록했다. 지난달 19일의 0.56%p보다 확대된 수치로, 다시 상승세로 전환된 모양새다. 이는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작년 12월 5일과 같은 수준이다.
◇ 하락하던 신용 스프레드, 美 관세부과 이후 상승
신용 스프레드는 기업이 채권을 발행할 때 국채 금리에 더해 부담하는 금리를 말한다. 이 수치가 커질수록 채권 투자자들이 더 많은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금 조달이 어려운 중소기업이나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은 더 큰 부담을 안게 된다.
신용 스프레드는 작년 말까지 0.59%p 수준에서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했지만, 작년 12월 비상계엄 선포와 국고채 지표물(가장 최근에 발행된 국고채) 교체가 겹치면서 0.65%p까지 급등했고, 한덕수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12월 27일 0.69%p까지 올랐다. 이후 정국 불안이 일정 부분 해소되자 0.56%p로 떨어졌으나, 미국의 관세 이슈가 터지면서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통상 증권사들은 새 국채가 발행되면 교체 매매를 통해 기존에 보유하던 국고채를 새 채권으로 교체하는데, 이 과정에 국채 매수가 늘어나면서 신용 스프레드가 확대된다. 평상시라면 이렇게 확대된 신용 스프레드는 1~2주 만에 다시 축소된다. 그런데 작년 말에는 정치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한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스프레드 확대의 배경으로 국내 정치 리스크보다는 미국발(發) 대외 변수의 영향을 더 크게 보고 있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신용 스프레드의 방향성이 위로 열려 있다”며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은 이전보다 줄었지만, 미국발 관세 불확실성이 현재 채권시장 전반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기업들의 만기도래 물량이 집중되며 추가 부담 요인이 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2분기(4~6월) 중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는 총 23조1749억 원에 달한다. 이는 올해 전체 회사채 만기 규모(79조1061억 원)의 약 29%에 해당한다. 즉, 2분기 안에 전체 회사채의 3분의 1 가까이가 만기를 맞는 셈이다.
문제는 이처럼 만기 물량이 집중된 시기에 신용 스프레드가 상승하면 차환 발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유동성 경색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일수록 재발행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고, 이는 곧 기업의 부도위험 증가로 이어진다.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로 신용 스프레드가 0.98%p까지 확대됐던 지난 2022년 9월에도 차환에 실패한 사업장들이 잇따르면서 건설사들의 연쇄부도로 이어진 바 있다.
◇ 당국도 경계태세… “100兆 시장안정 프로그램 가동"
아직까지는 회사채 투자심리가 급격히 악화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경제의 하방 리스크가 점차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정치·외교적 리스크까지 겹칠 경우, 시장이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최근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관세 전쟁 강도를 높이면서 국내 수출 기업들의 수익성에 대한 불안감도 확대되는 모습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작년 말 낸 보고서에서 “단기금융, 회사채 등 직간접 금융시장 어느 한 곳에서라도 중대한 신용 위험(크레딧 이벤트)이 발생한다면 하강 국면에 있는 경제환경과 취약한 투자자 심리가 결합돼 자본시장에 상당한 트리거(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에 금융당국도 예의주시하며 비상 대응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당국은 비상계엄 직후 가동한 4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와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을 여전히 유지하면서 필요시 자금을 즉시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상호관세 부과를 앞둔 지난 7일에는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채안펀드를 포함해 100조원 규모의 시장안정 프로그램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에도 시장의 불안 요인은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김상만 연구원은 “대내외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시장의 피로감이 점차 누적되는 양상”이라면서 “국내 신용채권시장이 현재 중요한 변곡점에 처해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