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0건 이상 발생하는 싱크홀의 원인으로는 상·하수도관 누수가 가장 먼저 거론된다. 땅 밑에 깔린 상·하수도관은 갈수록 심각하게 노후화하고 있지만, 교체 작업은 더딘 상황이다.
수도 관리 주무부처인 환경부와 관리 책임을 져야 하는 지방자치단체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밀고 있다. 환경부는 “노후 수도관 교체는 지자체가 할 일”이라는 입장이고, 지자체는 “예산이 부족해 상·하수도관을 적기에 교체하기 어렵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상하수도 요금 현실화’와 ‘효율성 증대’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1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0년(2014~2023년)간 발생한 싱크홀 원인의 42.01%(876건)가 하수관 손상, 12.61%(263건)는 상수관 손상으로, 싱크홀 사고 원인의 절반 이상이 노후 상·하수도관 문제로 나타났다.
지하 개발이 많은 서울시도 상황이 비슷하다. 서울시의 ‘2025년 지하안전관리계획(안)’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3년까지 발생한 싱크홀(211건) 중 하수도 노후화에 따른 싱크홀은 50.7%(107건), 상수도 노후화에 따른 싱크홀은 14.2%(30건)이었다. 싱크홀 10건 중 6~7건은 상하수도관 문제가 원인이었다.
노후 상하수도는 어떻게 싱크홀 사고를 유발할까. 일반적으로 오래된 수도관은 이음새가 어긋나거나 깨져서 틈새가 생긴다. 그 틈새로 물이 흘러나와 주변 흙을 쓸고 내려가거나, 위쪽의 흙이 틈새를 통해 상하수도관으로 들어가게 된다. 상부에 있던 흙이 관으로 들어온 뒤, 흘러가면 본래 흙이 있던 공간은 비게 된다. 중력의 영향을 받아 윗 공간의 흙과 도로가 꺼지는 게 바로 ‘싱크홀’ 현상이다.
◇ 전국 노후 상하수도관, 17만㎞… 전체의 40%에 달해
국내 상·하수도관은 얼마나 낡았을까.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에 매립된지 20년이 지난 상수관은 전체의 37.5%(9만183㎞), 노후 하수관(7만5837㎞)은 전체의 44%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플라스틱관의 내구연한은 20년, 금속관의 내구연한은 30년으로 본다. 전국 수도망의 40%는 교체 대상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내구연한이 지났다고 해서 해당 하수관을 반드시 교체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지반 침하 등 사고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자명하다”고 말한다.
특히 오래된 도심일수록 수도관 노후 정도가 심하다. 환경부에 따르면, 서울특별시(68.6%)와 부산광역시(60.6%), 광주광역시(56.2%)는 상수관 중 절반 이상이 설치한지 21년이 지났다. 하수관 노후화 역시 대구광역시(74%), 광주광역시(67%), 서울특별시(66.1%) 등 일찍 개발이 된 대도시가 심각하다.
최근 지름과 폭 20m 규모로 싱크홀이 발생한 서울 강동구 사고 현장에도 노후한 하수도관이 매설돼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설된 하수도는 600㎜, 450㎜ 두 종류였는데, 600㎜ 하수도관은 매립된지 21년 됐고, 450㎜는 매설연도가 30년 이상으로 설치년도 기록이 ‘미상’으로 남아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십년 전 수도관을 매립할 때 기록을 충실히 남기지 않은 탓이다.
◇ 지자체 “예산 부족해 정부 지원 必”vs. 환경부 “지자체 할 일”
상황이 이렇지만, 상하수관 정밀조사와 노후관 교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상수관과 하수관 1km를 교체한다고 가정할 경우 소요되는 돈은 각각 8억~10억원, 18억원에 달한다. 도로를 굴착하고 포장할 때 교통을 통제해야 하거나, 상수도 공사 시 단수를 해야하는 경우도 많아 불편을 토로하거나 민원을 제기하는 시민도 많다.
지자체는 예산 부족을 토로한다. 환경부는 이를 고려해 재정 상황이 열악한 지자체를 대상으로 노후관 교체 시 국비를 지원하고 있다. 환경부는 특별시·광역시가 아닌 지자체가 노후 상수도관을 교체할 경우, 비용의 절반(50%)을 지원한다. 노후 하수도관을 교체할 경우 광역시에는 30%, 나머지 시군에는 60%를 지원한다.
기초지자체에 비해 중앙 정부 재정 지원을 적게 받는 특별·광역시는 중앙 정부의 추가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상하수도 교체와 검사는 원래 지자체의 일”이라며 “예산을 더 늘리긴 어렵다”고 선을 긋는다.
현행법상 상하수도 관리 업무는 지자체와 수도사업자의 의무다.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각 지자체는 수도관 등 지하시설물을 연 1회 이상 점검해야 한다. 하지만 지반침하 우려가 없다면 점검을 생략할 수 있어 지자체는 수시점검을 하는 데 그친다. 수도법 상 기술진단 의무 규정도 지자체에 부과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상하수도 교체 사업이 주민들의 큰 지지를 받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지자체 내부에서도 후순위로 밀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두일 단국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상·하수도관은 땅 속에 있다보니 교체를 한다고 해도 눈에 띄지 않기도 하고,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중요한 줄 모른다”며 “지자체장들의 외면을 받아 가용예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물 1L 생산에 1.07원 소요, 판매단가는 0.8원… 노후관 고칠 재원 없어
전문가들은 예산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도요금 정상화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한다.
현재 지자체는 상수관 등 수도관 교체 비용 기반을 ‘수도 요금’에서 충당 중이다. 문제는 물을 생산하는 비용보다 판매하는 단가가 낮아 수도 판매 수익으로 수도관 교체 비용을 마련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물 1L를 생산하는 데 드는 원가는 1.069원인 반면, 평균 판매 단가는 0.796원에 그친다. 1L를 판매할 때마다 0.273원씩 손해를 보는 것이다. 전국 기준 요금현실화율(수돗물 생산원가 대비 판매가)은 74.5%에 그친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시(92.7%), 울산광역시(90.2%), 대전광역시(86.8%) 등은 그나마 높은 편이지만, 강원도(52%), 경상북도(54.5%), 전라남도(56.7%) 등은 생산 원가의 절반에 물을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류재나 한국환경연구원(KEI) 연구위원은 “물을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원가가 보장되지 않아, 상하수도관을 고칠 여력이 없는 것”이라며 “수도 요금을 인상해야 지자체들도 노후 상하수도관을 교체할 여력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김두일 교수도 “공공요금을 올리지 않으려고 하니까 노후 상하수도관을 교체할 예산이 없고, 시설은 낙후하고 결국 사고가 터지는 구조”라며 “지자체도 정부에 손을 벌리기 보다 수도요금을 올리는 등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