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1일 오전 10시 서울 강동구 명일동 대명초등학교 인근 사거리.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일주일 전인 3월 24일 지름과 깊이가 20m에 달하는 대형 싱크홀이 발생한 현장이다.
밖에서 본 싱크홀은 6차선 도로의 5개 차선을 모두 삼킨 정도로 거대했다. 남아있는 일차선도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가 겨우 붙어있는 수준이었다. 깊이는 육안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20m를 아파트 높이로 치면 7층을 넘어서는 깊이다.
서울 아리수 본부와 강동구청 관계자를 비롯해 시공사 인력 등 21명이 대열을 이뤘다. 안전모를 쓴 직원들은 싱크홀 바로 앞 꽃집 계단에 올라가 싱크홀과 주변의 사진을 찍었다.
오후엔 국토부 사고조사위원회 위원 12명이 현장 조사를 나왔다. 이들은 외부뿐만 아니라 싱크홀에 들어가 내부까지 살폈다. 드론도 투입했다. 드론은 조종사의 입력값대로 싱크홀 내외부를 오가며 현장을 기록했다.
사조위 관계자는 “외부 피해 상황과 싱크홀 내부 상황, 주변 공사 상황을 살펴 추가 위험이 없는지 확인했다”며 “모든 의혹이 다 해결될 수 있도록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 공포에 떠는 시민들… 주유소 사장 “매일 수면제 먹고 잠 청해”
사고 현장에는 폴리스라인이 쳐지고 사방이 막혔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관심을 두고 싱크홀의 상태와 복구에 대해 물었다.
주민들은 영업을 못 하고 페인트칠만 하고 있는 주유소 사장에게 “언제 문을 여냐” “보상은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주유소 사장은 “얼마나 영업을 못 할지도 모른다. 국가가 보상을 해주면, 얼마나 해주겠냐”며 한숨을 쉬었다.
싱크홀 옆을 지나가던 주민 오두일(60)씨는 걸음을 멈추고 싱크홀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오씨는 “이 사거리는 자주 싱크홀이 발생하는 곳”이라며 “그래도 이렇게 큰 싱크홀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주유소 단골손님이었다는 주민 김명국(64)씨는 “이제 이곳을 지나가는 것도 불안하다”고 했다.
국토부가 사고 조사에 착수한 지 일주일이 지나가지만 아직 명확한 사고 원인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과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사고 현장 지하에서 진행된 서울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 공사가 핵심 원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하철 공사와 상하수 누수가 결합해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사고 지점 아래에서 상수관 손상과 누수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서울시와 국토부는 복합적 원인에 무게를 두고, 심층 조사를 통해 명확한 원인을 규명할 계획이다.
◇ 서울·부산에서 잇따라 지반침하 사고 발생
명일동 싱크홀 사고 원인을 공식 발표하기도 전에 또다시 싱크홀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3일 오전 부산 사상구 학장동 도시철도 공사 현장 인근에서 가로 5m, 세로 3m, 깊이 5m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해당 구역에서는 지난해 9월을 비롯해 6건의 지반침하 사고가 발생했다. 작년 9월에는 대형 싱크홀이 생겨 트럭 2대가 바닥 8m 아래로 추락하기도 했다.
같은 날 오전 서울 마포구 애오개역 인근에서도 싱크홀이 발생했다. 지름 40㎝로 크기는 작지만, 깊이는 1.3m에 달했다. 싱크홀 바로 아래 지점을 파내자 지름 60cm가량의 하수관이 균열 간 상태로 드러났다.
지자체는 이번 사고 원인을 하수관 균열로 인한 동공으로 추정했다. 하수관에서 샌 물이 퇴적층을 약화시켰고, 이 때문에 지반이 침하했다는 뜻이다.
◇ 지하철 공사에 노후관로 누수까지… 싱크홀 사고 원인 살펴보니
지난 5년간 이틀에 한 번꼴로 땅이 꺼졌다.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이 국토안전관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9~2023년) 전국에서 발생한 싱크홀은 총 957건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 보면 2019년 193건, 2020년 284건, 2021년 142건, 2022년 177건, 2023년 161건 등이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197건으로 가장 많았고, 광주(122건), 부산(85건), 서울(81건), 전북(70건), 강원(68건), 대전(66건) 순이었다.
사고 원인은 하수관 손상이 446건(46.6%)으로 비중이 가장 컸다. 다짐(되메우기) 불량 171건(17.9%), 굴착공사 부실 82건(8.6%), 기타 매설물 손상 64건(6.7%), 상수관 손상 39건(4.1%)도 싱크홀 발생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반침하’는 지하 시설물의 노후화나 공사 후 다짐 불량, 주변 공사 영향 등으로 발생한다. 굴착공사 중 나오는 지하수 및 토사 관리 미흡이나 시공 불량, 터널 막장면 관리 실패도 원인이 된다.
이번 명일동 사고는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 공사에 따른 지반 약화와 누수가 겹쳐 발생한 복합적 사고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번 사고는 2014년 8월 서울 송파구 석촌지하차도에서 발생한 대형 싱크홀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에도 지하철 9호선 터널 공사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됐다.
당시 사고조사단장을 맡았던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서울시는 싱크홀 원인을 상습적으로 노후 상하수도관으로 돌리지만, 하수관 손상은 대체로 지하 2~3m 깊이에서 소규모로 발생한다”며 “이번처럼 아파트 7층 높이에 해당하는 깊이에서 발생한 대형 싱크홀은 명백히 대형 지하 공사의 시공·감리 부실이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지하 공사 과정에서 적용됐어야 할 지반 보강공법이 제대로 시행됐는지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터널은 주변 흙과 모래층을 단단히 고정하는 보강 작업 없이 뚫을 경우 천장부가 무너지는 전단파괴(shear failure)가 발생할 수 있다”며 “지반 성질에 맞는 보강 없이 무리하게 공사를 밀어붙인 정황이 보인다”고 말했다.
명일동 사고는 누수가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상하수도가 노후화하면 물이 새면서 지반 내 흙이 유실되고, 여기에 차량 하중이 반복되면 결국 도로가 내려앉게 된다”고 말했다.
공 교수는 선제적인 노후 상하수도 개선을 강조했다. 공 교수는 “싱크홀 사고를 예방하려면 노후 지하 관로의 내구연한을 정하고, 정기적으로 점검해 선제적으로 교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도시철도 9호선 건설공사와 연관이 없는 전문가들로 사고조사위를 구성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기술적 원인을 중심으로 철저히 규명하되 지하철 공사, 하수관 손상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의혹이 해소될 수 있도록 다각도로 접근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