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기준금리를 인하한 한국은행이 숨 고르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오는 17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전문가 대다수는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진 만큼 5월 금통위에서는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조선비즈가 13일 국내 증권사 거시경제·채권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전원은 오는 17일 열리는 한은 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현행 연 2.75%로 유지될 것으로 봤다. 이는 올해 2월 시작된 한은의 금리 인하 기조가 일시적으로 멈출 수 있음을 시사한다.
◇ 전문가 100% “4월엔 금리 동결”… 환율·가계부채 불안 영향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과한 상호관세로 인해 환율 변동성이 커진 점을 주요 동결 요인으로 꼽았다. 미국이 철강과 알루미늄에 품목별 관세를 부과한 지난달 12일 원·달러 환율은 1450원을 넘어섰고, 상호관세가 발효된 지난 9일 무려 1487.6원까지 급등했다. 이튿날 상호관세 유예 소식이 전해지면서 환율은 다소 안정됐지만, 여전히 1400원을 훌쩍 넘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9일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10% 보편관세를 부과했다. 한국(25%)과 대만(32%), 중국(34%) 등 주요 교역국을 대상으로는 보편관세보다 세율이 높은 상호관세를 적용했다. 상호관세는 90일간 유예됐지만 10% 보편관세는 유지돼 수출 기업들의 관세 부담은 이전보다 높아진 상태다.
부동산 시장 불안도 금리 동결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강남 3구(서초구, 강남구, 송파구)에 적용된 토지거래허가제가 지난 2월 해제됐다가 한 달 만에 재지정되는 과정에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다. 서울 아파트값은 토허제 해제 가능성이 거론된 2월 첫째 주부터 10주 연속 상승 중이며, 2월 서울 전체 주택거래량은 전월 대비 37.9% 증가한 7230건으로 나타났다.
집값 상승은 가계대출 증가세에 불을 지폈다. 지난 9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3월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2월 말과 비교해 4000억원 늘었다. 이 기간 주택담보대출이 3조4000억원 증가하면서 전체 가계대출 증가를 주도했다. 금융위에서는 토허제 해제 이후·재지정 이전 발생한 부동산 거래가 시차를 두고 가계대출에 반영돼 향후 대출규모가 늘어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신얼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원화는 트럼프 취임 이후 2% 이상 절하되고 있고, 탄핵 정국이 해소됐음에도 환율 널뛰기 현상은 지속 중”이라면서 “경기 둔화에 따른 금리 인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다수 금통위원에게는 국내외 정국 불확실성이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금융안정 측면에서 높은 환율 변동성과 가계부채 재확대 가능성 등이 부담 요인으로 남아있고, 미국 상호 관세에 대한 영향도 불확실하다”면서 “아직은 추가 협상 여부와 실물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조금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5월 금리인하 재개 유력… 연말 금리 수준은 2.25% 우세
전문가들 대다수는 한은이 5월에 금리 인하를 재개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상호관세 여파로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이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앞서 한은은 지난 3월 발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올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제시하면서, 미국이 중국을 포함한 주요 무역 적자국에 관세를 높여 부과한 뒤 2026년까지 유지하고, 다른 나라들이 미국에 고강도 보복관세로 대응할 경우 성장률이 더 하락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미국의 상호관세가 기존 비관 시나리오보다 더 강도 높게 평가되면서 성장률 둔화 우려가 더욱 커졌다.
조만간 발표 예정인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4~5월 중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책과의 공조 차원에서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관계장관간담회를 열고 “더 이상 위기 대응을 늦출 수 없다”면서 “정부는 다음 주 초 10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채권전략팀장은 “금통위가 이번 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하더라도 조건부 포워드 가이던스(금통위원들의 금리 전망을 취합한 것)에서 2명 정도가 3개월 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인하 신호를 줄 것으로 보인다”면서 “금리 인하는 추경 시점과 맞물려 5월에 재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7월 금리 인하를 예상하는 의견도 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예상보다 환율이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으며 위안화 절하에 따른 추가적인 상방위험도 있다”면서 “서울 집값 상승세와 가계부채 증가세를 고려할 때 7월 금리 인하를 예상한다”고 했다.
연말 기준금리 수준에 대해서는 10명 중 8명이 2.25%를, 1명은 2.5%, 1명은 2.0%를 예상했다. 2.25%를 예상한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당초 올해 말 금리 수준을 2.50%로 예상했는데 2.25%로 전망치를 낮췄다”면서 “대선 이후 들어설 새 정부가 확장재정 기조를 보일 가능성이 높고, 한은도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부양 효과를 높일 것 같다”고 전망했다.
2.5%를 예상한 공동락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기준금리는 지난 2월을 포함해 2회 인하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추가 인하 시 환율 변동성 위험 등에 노출될 여지를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2.25%를 제시한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상호관세 부과로 경기 하강 리스크가 심해졌고, 5월 경제전망에서 올해 및 내년 성장률을 추가 하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