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정책으로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필연적이라는 국책 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현재 미국은 자국이 아닌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페널티를 부과하는 탓에 우리 기업들이 현지에 공장을 지었는데, 이들이 한국에서 들여오는 물품은 미국의 수입으로 잡힌다.
즉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압박했고, 국내 기업이 그걸 따랐기 때문에 한국이 무역 흑자를 크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불공정한 결과가 아닌 정당한 성과라는 점을 미국에 전달해야 한다는 조언도 함께 제시됐다.
산업연구원(KIET)은 11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한국 대미 수출의 구조적 분석: 수지 불균형을 넘어선 산업 연계구조’ 보고서를 발표했다. 산업연구원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무역수지를 수치만 봤다며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의 구조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근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생산에 필요한 중간재(부품) 및 자본재(생산수단)를 상당 부분 한국 내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들의 미국 내 투자는 한국의 수출을 직접적으로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높은 인건비와 물가 때문에 현지 진출 기업들은 중간재와 자본재를 한국에서 조달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운영에 필요한 제품 59%를 국내에서 가져다 쓴다. 이 때문에 2020년 166억달러 수준이었던 대미 무역수지는 2022년 280억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엔 560억달러까지 뛰었다.
문제는 국내 기업의 미국 진출이 줄줄이 예정돼 있어 한국의 무역 수지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현대차그룹은 철강부터 완성차까지 전 생산단계를 미국 내에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그 규모는 210억달러다. 이달 LG에너지솔루션 역시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 미시간 배터리 공장을 20억 달러에 인수해 미국 내 생산 거점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현지 매입 비중이 상승하는 추세라는 점이다. 2020년 기준 현지 매입 비중은 28.3%였으나 2023년엔 32.1%로 올랐다. 미국의 제조업 우대 정책, 기업들의 관세 회피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박 연구위원은 “한국산 중간재와 자본재는 미국 제조업 생산을 뒷받침하는 핵심 투입 요소로 기능해 왔다”며 “이들 품목의 수출 확대에 따른 무역흑자는 한국 수출이 미국 제조업 성장에 기여한 데 따른 필연적 결과”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무역수지 흑자의 정당성과 상호보완적 구조를 미국 측에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이를 통상 협상의 논리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