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4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12·3 윤석열 비상계엄을 해제한 대한민국 국민께 드리는 감사문에 대한 수정안이 가결되고 있다. /뉴스1

명품 직구 플랫폼 ‘발란’이 수개월간 판매자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온라인 플랫폼 거래의 제도적 공백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 이후 공정거래위원회가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반년 넘게 논의는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산 리스크를 방치하면 제2, 제3의 ‘발란 사태’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에도 국회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11일 정부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발란 측과 접촉하며 정산 및 소비자 피해 관련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법상 공정위가 취할 수 있는 직접적인 조치 수단은 없는 상황이다. 발란은 대형마트처럼 직접 매입·판매를 하지 않고 판매자와 소비자를 중개하는 플랫폼 형태로 운영돼, 현행 대규모유통업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발란은 지난달 31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현재 입점한 1300여개 판매자에게 정산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으며, 업계에서는 미지급 규모를 수백억 원대로 추산하고 있다. 일부 판매자들은 “정산 내역조차 확인이 어려운 구조였다”며 “정산 기준이 수시로 바뀌었고, 공지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발란은 과거 PG사(전자지급결제대행사)를 통한 정산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밝혔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는 판매자 신뢰 확보에 실패했다. 계약서와 정산 주기(7·15·30일 중 선택)가 존재했음에도, 지급은 지연됐고 기준은 명확하지 않았다는 것이 입점 업체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구조가 플랫폼 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는 점이다. 실시간으로 결제가 이뤄지더라도, 실제 정산은 플랫폼의 운영 여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판매자 입장에서는 수익의 ‘불확실성’을 감내해야 한다. 최근 머스트잇과 트렌비 등도 정산 주기를 단축하며 신뢰 회복에 나섰지만,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명품 온라인플랫폼 발란이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가운데 1일 서울 강남구 발란 본사가 있는 공유오피스 로비에 '발란 전 인원 재택근무'라고 적힌 안내문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공정위는 지난해 10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연간 중개수익 100억원 이상 또는 거래금액 1000억원 이상인 플랫폼에 대해 구매 확정 후 20일 이내 정산을 의무화하고, 정산금의 절반 이상은 금융기관에 별도 예치하거나 지급보증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6개월째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공정위는 기존 대규모유통업법 내에서 온라인 플랫폼의 정산 관행만을 부분적으로 규율하려는 입장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거래 전반을 포괄하는 별도의 ‘온라인플랫폼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플랫폼의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주요 사업자를 사전에 지정해 규제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규제 범위와 접근 방식이 다른 두 법안이 병행 논의되며 ‘이중 입법’ 충돌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정작 입점 판매자 보호라는 원래 목적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국회 입법 일정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4월 임시국회가 열리더라도, 정무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개정안이 본회의로 회부되기는 어려운 만큼 실질적인 논의 진전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는 회의론이 제기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온라인 유통망의 취약성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보다 정밀하고 유연한 정책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