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에 수출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뉴스1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국내 반도체 산업에 대해 정부가 인프라·투자·R&D·인력 양성 부문 재정 지원을 강화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대해선 얼마나 관세를 부과할지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선제적인 대응으로 한국의 반도체 초격차 경쟁력을 유지하겠단 계획이다.

인공지능 분야와 관련해선 G3 도약을 목표로 인프라·산업화를 집중 지원한다. 바이오 분야는 미국 진출 기업 지원을 확대하고, 바이오 시밀러와 신약개발을 적극 지원한다. 이달 중 바이오분야 R&D 투자 계획과 규제개선 방향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차전지는 정책금융 지원을 확대하고 세제 지원을 강화한다. 철강은 고부가·저탄소 기술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함과 동시에 타국의 덤핑 등에 대해서도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조선은 미국의 MRO(유지보수) 수요를 기회요인으로 활용해 한미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석유화학은 공급과잉 설비 합리화 등 사업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정부는 9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한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통상환경 변화 대응을 위한 향후 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전기차 '아이오닉 5'를 생산하고 있는 현대차 스마트 공장./현대차 제공

◇ 韓 수출 7% 감소 우려… 中 견제 따른 반사 이익 가능성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국내 제조업 육성과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품목별 관세 및 국가별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품목별 관세는 현재 철강 및 알루미늄과 자동차에 부과했다. 반도체와 의약품은 조만간 관세율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국가별로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한국에는 25% 관세율이 부과됐다. 일본은 24%, 대만 32%, 베트남은 46%의 상호관세가 부과했다. 중국에는 기존관세 20%에 상호관세 34%를 추가 부과했으며, 8일(현지시각)에는 보복관세 50%포인트(p)를 더해 총 104%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미국의 관세 조치에 주요국도 대응 관세를 부과하는 등 관세 전쟁이 뜨거워지는 모습이다. 우선 중국은 모든 미국산 수입품에 34%의 관세를 부과함과 동시에 희토류 수출 통제에 나섰다. EU는 철강 관세에 대해 260억 유로 규모의 보복관세를 오는 15일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으며, 상호관세에 대한 보복관세를 검토 중이다.

정부는 이번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국내에서 제조한 상품의 가격이 상승해 대미 수출과 생산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대미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와 철강 업종의 수출 영향이 클 것”이라며 “가전·디스플레이는 베트남 등 해외생산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수출 시장 경쟁국인 중국에 대한 관세율이 높아지면서 반사 이익을 볼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장의 평가도 밝지 않다. KB증권은 이번 관세 조치로 한국의 전체 수출량은 최대 7%, 성장률은 최대 0.4%포인트(p) 하방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IBK경제연구소도 25% 관세 부과 시 대미 수출이 12.8%, 전체 수출이 4.6% 감소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3월 30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13차 한·일·중 경제통상장관회의에서 무토 요지 일본 경제산업성 대신(왼쪽), 왕 원타오 중국 상무부 부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 대미 협상&기업 지원… 정부, 투트랙 대응 추진

정부는 대미 협상을 통해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 인하를 도모하면서, 기업 부담을 덜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 대응 전략을 추진하기로 했다.

수출 감소 등 피해를 입은 기업에 대해선 관세대응 바우처 등 수출 바우처를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피해업종에 대한 특별 정책금융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통해 위기대응 특별 대출프로그램을 신설하고 유동성이 부족해진 기업을 위한 신보 위기대응 특례보증도 마련할 예정이다.

직격탄을 맞은 자동차 산업의 내수 진작을 위해 전기차 보조금을 확대하고 신차 구매시 개소세 탄력세율 추가 지원을 검토한다.

수출 다변화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한다. 글로벌 사우스 등 대체수출시장 발굴을 위해 해외 박람회 개최를 확대하고 30대 수출 프로젝트 발굴을 위한 주요국 수출플랫폼도 운영한다.

한·일·중 자유무역협정(FTA) 등 주요국과의 통상 협상도 가속화한다. 아랍에미리트(UAE), 에콰도르 등 이미 타결된 협정은 발효를 앞당기는 방안을 모색한다.

정부는 주력 업종을 대상으로 기술개발(R&D) 예비타당성조사(예타) 폐지를 추진한다. 경제적 중요성이 큰 고부가 기술의 경우 ‘국가전략기술’ 추가 지정도 검토한다.

이를 위해 국가재정법,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을 올해 목표로 추진한다. 법 개정이 지연될 경우, 예타 면제 등 패스트트랙을 활용할 예정이다.

첨단산업의 경우 대규모 지분투자·대출·보증 등이 가능한 ‘첨단전략산업기금’의 연내 가동을 추진한다. 반도체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위해 협의에 나서고, 반도체 클러스터 송전선로 지중화 비용(총 1조8000억 원) 지원 계획도 구체화하기로 했다.

통상환경 변화로 피해를 입는 산업·기업이 밀집된 지역의 경우 산업·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