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한국 국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이 내년 4월로 연기됐다. 일본이 한국 국채를 거래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편입 개시 시점이 계획보다 5개월 늦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 기대되던 선진국 자금 유입, 국채조달 비용 경감 등 편입 효과도 미뤄지게 됐다.

글로벌 지수 제공업체인 영국의 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은 8일(현지시각) 오후 “한국의 WGBI 편입이 확정됐다”면서 “한국의 WGBI 편입 시작 시점을 내년 4월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다만, 월 단위(8회)로 한국 국채의 비중을 확대해 최종 편입 완료 시점은 2026년 11월로 유지할 방침이다. 앞서 FTSE 러셀은 올해 11월부터 지수를 반영하기 시작해 1년동안 분기별로 편입비중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WGBI는 세계 최대 채권 지수로, 이 지수에 맞춰 투자를 결정하는 자금만 2조5000억달러에 달한다. 올해 기준으로 미국과 일본, 영국 등 25국의 국채가 세계 국채 지수에 편입돼 있고, 내년 4월부터 한국 국채도 포함된다. WGBI 추종 자금을 고려할 때, 한국(2.05%)에는 약 75조~90조원의 해외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정서희

FTSE 러셀은 편입 시작 시점 연기에 대해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국채시장에 원활히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 기간을 확보하고, 월별로 편입 비중을 확대할 때 포트폴리오 운용이 더 간단하고 용이해진다는 시장 참가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했다”고 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현재 일본의 증권 매매 시스템에서 한국 국채 거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일본 측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FTSE 러셀은 또 “한국의 WGBI 편입에 대해 시장 전반에서 폭넓은 지지가 지속되고 있으며, 한국 정부가 국제 투자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글로벌 채권 투자 기준에 부합하는 시장 환경을 조성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 “WGBI 편입 지연,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 아냐”

일각에서는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기재부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편입 시점 연기에 미쳤을 가능성은 0%라고 본다”고 선을 그었다. FTSE 러셀도 이번 시작 시점 연기가 ‘한국 국채의 원활한 지수편입을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한국 국채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다면, FTSE 러셀이 편입 자체를 취소하거나 편입 완료 시점을 연기했을 것”이라며 ”FTSE 러셀 관계자들과의 면담에서도 정치적 사안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했다.

WGBI 편입 일정이 조정된 사례는 한국이 처음은 아니다. 앞선 중국도 WGBI에 편입될 당시, 투자 인프라 문제로 인해 편입 완료까지 걸리는 기간이 기존 1년에서 3년으로 늘었다. 다만, 당시 중국의 WGBI 편입 개시 시점(2021년 10월)은 조정되지 않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중국의 WGBI 편입 전까지 투자 인프라가 원활하게 구축되지 못하면서, 중국은 WGBI 편입 효과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라며 “현재 일본은 ‘중국을 제외한 WGBI 지수’를 별도로 구성해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투자 실행을 위한 내부 절차를 마무리하고, 테스트 거래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이 한국의 WGBI 편입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제도의 안정적인 정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WGBI 편입 효과도 내년으로 지연

한편, 이번 WGBI 편입 지연으로 최근 유입된 외국인의 자본이 유출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투자 자금 유입이 늦어지면서, 선진국 자금 유입, 국채조달비용 경감 등 WGBI 편입 효과도 내년에야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국채 시장에 해외 자금이 유입되면 국채 금리 하락과 환율 안정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

이 때문에 WGBI 편입 연기가 올해 추가경정예산 편성 추진을 공식화하고 재원 조달 방법을 고민 중인 정부로서는 아쉬운 대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정부는 2년째 계속된 대규모 ‘세수 결손’으로 적자성 국채 발행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김재환 기재부 국제금융국장은 “편입 취소가 아닌 일정 조정인 만큼, 외국인 자금 유출 등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면서도 “최근 외국인 자금이 많이 유입돼 있는 만큼 지속해서 시장 안정화 조치를 해나가고,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해 적시에 대응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앞으로도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국채에 차질없이 투자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와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점검·보완하는 한편, 시장과의 소통을 한층 더 강화하면서 실제 투자 사례를 창출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WGBI 편입이 한국 국채시장 발전을 넘어 자본시장 전반의 구조적 선진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동성 확대와 외환·채권시장 구조개선 노력도 지속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