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480원대를 기록했다.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이 심화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의 불확실성이 확대된 영향이다. 원화와 동조성이 높은 위안화의 약세도 환율 상승을 부추겼다.
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 거래일(1473.2원)보다 10.9원 오른 1484.1원을 기록했다. 환율 종가 기준으로는 2009년 3월 12일(1496.5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날 환율은 개장과 동시에 1484원으로 출발하며 2009년 3월 16일(1488.0원) 이후 처음으로 시가 기준 1480원대를 기록했다. 오전 중 상승 폭을 키우면서 1487.3원까지 치솟았지만, 이후 하락해 1477.10원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오후 들어 다시 상승 전환해 1484원대에서 주간 거래를 마쳤다.
환율 급등의 직접적인 계기는 미국의 고율 관세였다. 미국이 이날부터 중국산 제품에 104% 관세를 부과했다. 이는 지난달 부과한 관세 20%, 이달 2일(현지 시각) 발표된 상호관세 34%, 중국의 보복관세 대응한 추가 관세 50%를 합친 것이다. 관세 충돌로 인한 글로벌 불확실성이 환율에 반영된 것이다.
위안화 약세도 환율 상승을 부추겼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달러·위안 환율은 7.3499위안으로, 2007년 11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통상 원화는 위안화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위안화의 ‘프록시(proxy·대리)’ 통화라고 불린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DXY)는 이날 오후 4시 46분 기준 102.32를 기록하면서 전날(103대)보다 하락했다. 중국과의 갈등에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가 불거지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높아진 영향이다.
반면 미중 갈등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안전자산인 유로화와 엔화 가치는 오르고 있다. 유로·달러(유로 당 달러) 환율은 1.1063달러, 달러·엔(달러 당 엔) 환율은 145엔대를 기록 중이다. 역시 안전통화로 꼽히는 스위스프랑도 가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스위스프랑(달러 당 스위스프랑) 환율은 0.88스위스프랑에서 0.84스위스프랑으로 하락했다.
일각에서는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0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관세 정책 기조가 연초 예상보다 강경한 점을 고려하면 단기적인 변동성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2분기 원·달러 환율 상단을 1500원까지 열어둬야 할 것”이라고 했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2분기 환율 상단을 1500원으로 제시하며 “미중 갈등이 고조되며 4월 이후 외국인은 주식 순매도를 지속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금융계정 내 달러 수요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환율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외환당국의 실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커질 전망이다. 현재 한은은 보유 외환을 일부 풀어 환율을 방어하고 있지만 적극적인 개입에는 나서지 않은 상태다. 권 연구원은 “작년 말 환율이 1485원 부근까지 올랐을 당시 당국은 은행권 선물환 포지션 및 외화대출 규제 완화 등의 조치로 외화 유동성 확보를 지원한 바 있다”면서 “현재 환율 수준에서도 당국의 실개입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