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가채무가 1175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도(1126조8000억원) 대비 48조원 이상 늘어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정부가 8일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한 ‘2024 회계연도 국가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정부 채무는 1141조2000억원으로, 전년도 결산(1092조5000억원) 대비 48조5000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지방정부 순채무는 34조1000억원으로 집계돼, 전년도 대비 2000억원 줄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6.1%였다. 기존 전망치(47.4%)보다 1.3%포인트(p) 낮은 수치다.
◇ 원화 외평채 미발행·주택채 감소에 ‘국가채무 증가 폭’ 전망보다 적어
국가채무가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지만, 정부는 지난해 예상만큼 국가채무가 늘어나지는 않았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예산을 세울 당시 국가채무가 한 해 동안 69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48조5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를 위해 정책적 조치를 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해 원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는 국회의 입법 지연으로 발행되지 못했고, 주택채도 부동산 경기 하강으로 인해 예상만큼 발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예산에 18조원 규모의 원화 외평채 발행 계획을 반영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관련 입법이 지난해 말까지 지연되면서, 원화 외평채는 발행되지 못했다. 해당 법안은 지난해 12월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기재부는 올해 1월에야 원화 외평채 발행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외평채는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정부가 발행하고 보증하는 일종의 국채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달러 가치가 상승할 때 달러 표시 외평채를 발행하고, 원화 가치가 강세를 보이면 원화 표시 외평채를 발행해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에 자금을 조달한다. 정부는 2023~2024년 세수 결손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외평기금을 활용했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고 외환보유액이 4000억달러 대로 충분해, 문제가 없다는 이유였다. 일각에서는 “외환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 대응 여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주택채도 예상보다 적게 발행됐다. 주택채는 정부가 저소득층 주택자금 대출 등 국민주택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국채의 일종인데, 아파트 등 부동산 매매·등기 시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 부동산 거래가 예상보다 적어 주택채 발행량이 감소했다. 정부는 지난해 83조7000억원의 주택채를 발행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79조1000억원의 주택채를 발행하는 데 그쳤다.
◇ 기금 활용해 31兆 세수 결손 메웠다
정부도 “원화 외평채와 주택채는 국가 채무를 낮추기 위한 정부의 정책적 조치가 아니였다”고 인정하면서도 “세입이 예산 대비 적은 상황에서도 국고채를 발행하지 않은 것은 국가 채무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가 맞는다”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지난해 31조원에 달하는 세수 결손을 메우기 위해 총 17조원 규모의 기금·특별회계 가용 재원을 활용했다. 여기에는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비상금처럼 쌓아둔 외평기금 4조원, 2023년 이월된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 약 4조원, 청약통장 납입금 등으로 조성된 주택도시기금 여유 재원 3조2000억 원 등이 포함됐다. 이외에도 ▲환경개선 특별회계 1조8000억원 ▲산재보험기금 1조 6000억원 ▲교통시설 특별회계 1조1000억원 ▲예금보험기금채권 상환기금 1조원 ▲국유재산관리기금 3000억원 등도 동원됐다.
하지만 정부의 기금 활용을 두고, 전문가들의 갑론을박은 이어진다. 국채 발행 대신 기금 활용이 바람직하다는 주장과, 정부가 손쉬운 임시 방편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이 엇갈리고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채를 발행해 미래 세대의 부담을 키우기보다는 여유 기금이 있다면 이를 활용해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고 향후 경기가 회복될 때 다시 채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가경정예산은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기금을 통한 자금 조달은 국회 승인 없이 가능해 정부가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기금 활용은 일종의 편법”이라며, “기금 사용도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