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지는 21대 대통령 선거일이 8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오는 6월 3일로 확정된 가운데, 세종시 어진동 대통령기록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 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지난해 나라살림 적자가 104조8000억원에 달하며 역대 세 번째 규모를 기록한 가운데, 6월 조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정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기 대응 명목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다 선심성 공약까지 무분별하게 쏟아질 경우 재정 건전성이 더욱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4회계연도 국가결산’에 따르면, 관리재정수지는 지난해 104조8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2020년(-112조원), 2022년(-117조원)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큰 규모다. GDP 대비 비율은 -4.1%로, 정부가 재정준칙으로 제시한 ‘-3% 이내’ 기준을 2년 연속 넘겼다.

국가채무는 1175조2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GDP 증가에 따라 비율은 전년(46.9%)보다 소폭 하락한 46.1%였지만, 채무 총액 자체는 전년 대비 48조5000억원 늘었다.

문제는 재정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이다. 여야 모두 추경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데다, 대선을 앞두고 선심성 공약까지 더해질 경우 재정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통상 리스크 대응과 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 서민·소상공인 지원 등에 약 10조원 수준의 ‘필수 추경’ 편성을 검토 중이다. 구체적인 추경 내역은 이르면 다음 주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는 통상 환경 변화와 대규모 산불, 민생 지원 등 제한적 목적에만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지역화폐 확대 등 경기 부양 성격의 예산이 포함된 약 35조원 규모의 대규모 추경을 주장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재정 건전성 회복을 명분으로 총지출 증가율을 억제해 온 만큼, 민주당은 추경 편성을 통해 지역경제와 취약계층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지는 21대 대통령 선거일이 8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오는 6월 3일로 확정된 가운데 세종시 어진동 대통령기록관 입구에 태극기, 정부 깃발, 대통령기록관 깃발이 동시에 펄럭이고 있다. /뉴스1

여기에 대선 국면에 돌입하면서 각 후보 진영에서 복지 확대나 생활비 지원 등 포퓰리즘성 공약이 경쟁적으로 쏟아질 가능성도 크다. 재정 전문가들은 “재정이 과도하게 정치에 끌려다니게 되면 중장기 건전성 목표는 무의미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고령화로 재정 악화가 구조화되고 있지만 지금처럼 내수가 침체한 시기에는 재정을 풀어서라도 경제를 떠받쳐야 한다”며 “다만 선심성 지출이 아니라 효율적인 지출로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추경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반기 추경으로 15조원 정도는 필요할 것”이라며 “대선 이후에는 새 정부 출범 전 국민 여론을 반영한 2차 추경까지 불가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국회가 확정한 올해 예산상 관리재정수지 목표는 -73조9000억원이다. 이를 맞추려면 지난해보다 30조9000억원가량 지출을 줄여야 하지만, 추경이 현실화하면 이 역시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올해 일반회계 세계잉여금은 2185억원에 불과해, 사실상 적자 국채 발행 외에는 뾰족한 재원 마련 수단도 없다.

재정 구조에 대한 근본적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가의 역할이 필요한 시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무분별한 재정 적자 누증”이라며 “진짜 필요한 곳에는 반드시 돈을 써야 하고, 그러려면 결국 세금도 더 걷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표 얻기용 지원이 아니라 중소상공인 부채 탕감이나 최저생계 보장 같은 실질 효과가 있는 지출로 유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지출 구조 개편도 주요 과제로 떠오른다. 익명을 요청한 한 경제학 교수는 “교육교부금, 기초연금 등 자동으로 늘어나는 의무지출 구조를 그대로 두고선 세수 부족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소득세나 법인세보다 은퇴 세대까지 폭넓게 부담하는 세목이 부가세”라며 “건강보험 재정이 구멍 나고 있는 지금, 부가세 증세는 미래 세대를 위한 선택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