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4월 7일 오후 4시 조선비즈 RM리포트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역대 부당 지원 사건 중 세 번째로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규모가 컸던 ‘호반건설’ 사건의 2심 판단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체면을 구기게 됐다. 이 사건과 관련한 호반건설 등 9개 사가 총 608억원의 과징금을 맞았는데, 서울고등법원이 이 중 60%인 365억원은 부당한 과징금이었단 판단을 내리면서다.
공정위가 문제 삼은 4가지 행위 중 가장 핵심이자 과징금 규모도 컸던 ‘공공택지 전매 행위’에 대해서도 “공정위 제재가 부당했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공정위는 큰 타격을 받은 모습이다. 공정위는 물론, 나머지 인정된 과징금마저도 부당하다는 호반건설 측까지 모두 대법원 상고에 나설 방침이어서 법적 공방은 길어질 예정이다.
8일 법조계·공정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는 호반건설 측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납부명령 취소 청구에서,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약 608억원) 중 60%(약 365억원)를 취소한다는 판결을 지난달 27일 내렸다.
이는 호반건설 그리고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의 장·차남이 소유한 회사의 완전자회사 등 9개 사가 연루된 사건이다. 이 중 호반건설에만 내려진 과징금은 약 393억원이었고, 고법은 이 중 위법이 인정된 170억원만 내라고 판결했다.
◇ 4가지 행위 중 과징금 가장 컸던 공공택지 전매 ‘부당’ 판단
공정위가 2년 전 해당 과징금을 매기며 문제 삼은 행위는 ①공공택지 전매 행위 ②이자 무상 대여 ③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보증 무상 지급 ④사업기회 제공 등이다. 이 중 ‘공공택지 전매 행위’와 ‘이자 무상 대여’에 대한 공정위 제재가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았다.
4가지 행위 중 가장 과징금 규모가 컸던 공공택지 전매 행위(360억원)는 요약하자면 “‘알짜’ 공공택지 사업권을 따낸 뒤 2세 회사에 무상으로 양도해 경영권을 ‘편법’ 승계했다”는 것이다. 2013~2015년 호반건설은 낙찰받은 23개 공공택지(공공택지 매매계약의 매수자 지위)를 2세 회사 및 관계사들(9곳)에 무상 양도했고, 그 결과 관계사들은 시행 사업에서만 수조원대의 분양 매출과 이익을 올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공공택지를 넘겨줘도 호반건설은 아무런 이익을 얻을 수 없었고, 2세 회사들은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점을 공정위는 문제 삼았다.
공정위는 이런 행위가 “부당성의 정도가 크다”고 보고 지원 ‘객체’ 9개사에 정액과징금 상한인 20억원을 산정 기준으로 정했다. 또 지원주체인 호반건설에는 180억원(20억×9개사)만큼의 부당 지원을 했다고 보고 180억원을 부과했다. 이 행위에 부과된 과징금 총액만 360억원이다.
◇ 法 “‘상당 규모 거래’·’과다한 경제 이익’ 부당 지원 조건 성립 안돼”
조선비즈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고법은 “호반건설이 공공택지를 전매함으로써 현저한 또는 상당한 규모의 거래로 9개사에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공정위가 문제 삼은 ‘부당 지원 행위’(구 공정거래법 23조)가 성립하기 위해선 ‘현저한 또는 상당한 규모의 거래가 있었는지’,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했는지’가 인정돼야 하는데, 고법은 이를 판단하기 위해 법리를 따졌다.
우선 고법은 “‘현저한 또는 상당한 규모의 거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호반건설로부터 지원을 받은 9개사 각각은 1~5건의 공공택지를 전매 받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공정위는 해당 23개 공공택지의 기대 이익 등을 따졌을 때 대규모의 양도를 한 것이라고 봤지만, 고법은 각사가 양도받은 횟수로 거래 규모를 따졌다.
공정위가 “해당 전매된 택지가 ‘알짜’였어서 전매 대상 택지의 경제적 가치가 막대했다”고 평가한 것과 관련해서도, 고법은 “그렇게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고법은 공공택지 시행 사업으로 인한 이익은 추후 9개사와 수분양자 사이 분양 계약을 통해 발생한 이익이었지, 호반건설의 공공택지 전매 행위 그 자체를 통해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고 본 것이다. 즉 지원 행위의 지원성이나 효과는 지원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는데, 공정위가 너무 먼 미래의 가치까지 책정한 것이라고 고법이 본 것이다.
지원 의도와 관련해서도 공정위는 2세 승계를 의심했지만, 호반건설 측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사업상 위험을 분산하거나,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고 신용도를 개선하기 위한 호반건설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고법은 이에 대해 별다른 판단을 내리진 않았다.
나머지 ‘이자 무상 대여’ 행위와 관련해서 고법은 “대여한 이자 규모가 굉장히 작고, 그 기간 역시 굉장히 단기간이었다”는 점을 들어 부당 지원으로 보지 않았다. 다만 ‘PF 보증 무상 지급’과 ‘공동주택 시공 사업 기회 제공’ 등은 문제 있는 행위라고 보면서 공정위 손을 들어줬다.
◇ 공정위 “공공택지 특수성 고려해야… 대법 최종 판단 다툴 것”
공정위는 제재 규모가 가장 컸던 공공택지 전매 행위가 인정되지 않은 데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가 100% 진 것이 아니다”라며 “대법원 상고는 당연히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호반건설 측도 고법 선고 직후 상고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대법원에서 공정위는 공공택지 전매 행위 자체의 경제적 가치를 어떻게 볼 것이냐를 중점적으로 다툴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공공택지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는, 선례가 없는 제재 사례”라며 “이를 단순 택지로 봐야 할지, 이후 파급되는 주택 시행 사업의 이익까지 결부해 봐야 할 문제인지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