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 및 통화당국 수장들이 가계부채 증가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부동산 대출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구체적인 방안으로 개인이 주택을 구입할 때 정부와 지분을 나눠 가지는 ‘지분형 모기지(주택금융)’ 제도를 제시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3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부동산 신용집중: 현황, 문제점, 그리고 개선방안’ 컨퍼런스에 참석해 부동산 금융과 관련해 특별 대담을 진행했다.
◇ “韓 장기저성장 우려, 부동산 문제와 관련”
이들은 먼저 현재 부동산 시장의 문제가 심상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통화정책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면서 “금리를 내리면 금융공급이 부동산에 쏠려 새산업을 키우지 못하고, 금융안정도 달성하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수요와 공급 측면 모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먼저 공급 측면에 대해서는 “민간 금융기관의 사업성 심사 기능이 너무 약하다”면서 “최근에 문제가 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경우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이 사업성에 대해 심사하지 않아 경기가 좋을 때는 과잉공급되다가 좋지 않을 때는 완전히 죽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수요부문에 대해서는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대출이 가계부채를 늘리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했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정책금융은 주로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을 도와주는 방향으로 활용됐는데, 그 규모가 최근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면서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과연 이 방식이 전체적인 거시건전성 차원에서 바람직한지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고 했다.
◇ 김병환 ‘지분형 모기지’ 제안… “부채→지분 전환 가능”
통화·금융당국 수장들은 부동산 쏠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대출공급 부문에서 공공부문의 역할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김 위원장이 개인이 정부와 함께 주택을 구입한 뒤 지분을 나눠갖는 ‘지분형 모기지’를 제안했다.
지분형 모기지는 주택 매입이 어려운 사람에게 주택금융공사가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대신 지분을 받는 방식의 정책금융 상품이다. 이를 활용하면 집값 하락 위험을 공공부문과 나눠가질 수 있고, 집값이 상승하면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집을 구매할 여력이 되지 않는 분들은 전·월세 형태로 거주해야 하는데, 이들은 주택가격이 오를때 그 상승분을 나눠가질 수 없어 자산의 격차가 심해진다”면서 “그러나 지분형 모기지를 사용하면 개인은 부채 부담을 줄일 수 있고, 거시건전성 관리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시범적으로 먼저 테스트를 해보고 시장의 수요를 점검해 구체화 방법을 고민해 볼 것”이라면서 “그 반응에 따라서 정책규모를 더 확대할지, 체계를 바꾸는 수준의 변혁을 추진할지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6월까지 발표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도 김 위원장의 주장에 동의했다. 이 총재는 “우리나라의 주택수요가 큰 이유는 레버리지 투자를 하기에 제일 좋은 상품이 부동산이기 때문”이라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금 조달 방식을 부채가 아닌 지분 확보로 전환해 위험과 수익을 공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복현 금감원장은 부동산에 대한 위험가중치(RW)를 조정해 부동산 대출 쏠림 현상을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주거용 부동산에 부과되는 위험가중치 15%가 한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적절한지 의문”이라면서 “홍콩의 경우 25% 가중치를 두는 등 국제 기준을 지키면서 각자의 상황에 맞게 하고 있다. 위험 가중치를 조정해 금융기관의 의사결정이 정부의 정책방향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