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1세대 KTX 열차가 승강장을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KTX 운임 인상을 두고 한국철도공사(코레일)과 정부의 기싸움이 드러났습니다. 한문희 코레일 사장이 정부와 논의하지 않은 채 “17% 인상을 추진한다”고 발표하면서, 정부가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죠. 정부는 운임 인상 가능성에 대해 단호히 선을 긋고 있습니다. 물가 안정 등 정책 기조에 따라 운임을 인상할 수 없고, 코레일의 재무건전성 개선을 위해 이미 국고 보조금까지 투입되고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3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5일 저녁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정부는 KTX 운임 인상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날 코레일 대전 본사에서 열린 국토부 기자단 초청 간담회에서 한문희 사장이 “14년간 동결된 KTX 운임을 현실적인 재정 여건을 반영해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와도 운임 인상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발표하자, 즉각 반박에 나선 것입니다.

한 사장의 간담회 후 정부는 코레일 측 실무진에 연락을 취해 상황 파악에 나섰고, 실무진은 정부에 “사장님이 그렇게 지를 줄 몰랐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고 전해졌습니다. 한 사장이 KTX 운임 인상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플레이’를 한 셈이죠.

한 사장이 공식석상에서 KTX 운임 인상 필요성을 호소한 것은 전기요금 급등, 부채 증가에 따른 이자 부담으로 코레일의 재무건전성에 한계가 왔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KTX 운임이 마지막으로 오른 것은 2011년 12월입니다.

코레일은 2016년 이후 지난해까지 9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적 부채는 약 21조원으로 연간 4130억원의 이자비용을 감당해야 합니다.

코레일은 오르는 전기요금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평균 9.7%)이 결정되면서, 코레일이 부담해야 하는 전기요금은 지난해 5796억원에서 올해 640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여기에 도입된 지 20년이 넘은 KTX 비중이 53.5%가 넘어, 노후 KTX 교체를 위한 재원 확보가 필요하다고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물가 관리를 위해 KTX 운임 인상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정부는 수년간 ‘공공운임 인상 억제’를 경제정책방향에 담고 있습니다.

이는 2021년 이후 한국이 극심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사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된 영향이었죠.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9~2020년 0%대에서 2021년 2.5%, 2022년 5.1%로 올랐고 지난해에는 3.6%로 둔화했습니다.

물가 상승률은 올해 들어 2% 내외로 둔화됐지만, 이미 많이 오른 물가로 소비자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은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KTX 운임 인상이 소비자한테 더 부담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죠. KTX 운임을 올리면, ITX나 전동열차 등의 운임 역시 잇따라 올릴 명분이 생긴다는 점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는 이미 코레일의 재무건전성 개선을 위해 노력 중입니다. 자산 매각이나 인력효율화 등을 주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공익서비스의무(PSO) 보상을 해주고 있습니다. PSO는 정부가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따라 코레일이 운영하는 철도의 노약자, 학생, 국가유공자 등에 대한 할인 요금과 적자 노선 유지 등에 드는 공적 비용을 보상해 주는 제도를 말합니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매년 3000억원 수준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부 관계자는 “KTX 운임 인상은 주무 부처인 국토부와 먼저 협의를 하고, 그 이후에 진전이 있으면 국토부와 기재부가 협의를 하는 절차를 거친다”며 “코레일 내부와 국회 등에서 운임 인상 요구가 있는 것으로 알지만, 아직 국토부는 인상 여부를 검토하고 있지도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부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두고 공공요금을 보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