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개월 연속 2%대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체감물가 수준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식품기업들이 올 초부터 가공식품 가격을 인상하고, 일부 채소·수산물과 외식 물가가 크게 오르고 있어 물가당국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여기에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산불이 발생하면서, 향후 먹거리 물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

정부는 향후 기상 여건이나 지정학적 요인으로 물가에 불확실성이 있다고 보고 물가 안정에 총력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또 산불로 인한 농축산물 피해를 신속하게 조사해 수급 영향을 분석하고, 적기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 가공식품부터 외식물가, 대학등록금까지 줄줄이 올랐다

식품·외식업계에서 최근 음료, 과자, 빵 등 가공식품과 외식 메뉴 가격 인상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연합뉴스

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가공식품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6% 상승하며, 전체 소비자물가 지수 상승률(2.1%)을 웃돌았다. 2023년 12월(4.2%) 이후 15개월 만에 최고치다. 커피(8.3%)와 빵(6.3%) 등 원재료 값이 오른 품목들의 가격 인상 폭이 컸다.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40곳이 넘는 가공식품 업체가 가격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이 오른 품목만 해도 커피, 초콜릿, 빵, 케이크, 라면, 아이스크림, 만두, 햄버거, 맥주, 치즈 등으로, 셀 수 없을 정도다. 가공식품 업체는 가격 인상 요인으로 ▲공급망 불안·이상기후에 따른 팜유, 코코아, 커피 등 식품 원자재 가격 상승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인건비·환율 상승 등을 들고 있다.

통계청은 “4월에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예고한 식품사들도 있기 때문에, 향후 수개월에 걸쳐 가격 인상 영향이 반영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농산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1% 내렸지만, 수산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3.6% 오르는 등 큰 폭으로 상승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수출이 지속되는 김의 물가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32.8%를 기록했다. 이상기후로 어획량이 줄어든 고등어(7.8%), 마른오징어(6.6%), 갈치(5.5%) 가격도 전년 동월 대비 크게 올랐다.

채소류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8% 오르는 데 그쳤지만, 소비자들이 자주 찾는 무(86.4%), 배추(49.7%), 양파(26.9%) 등의 가격은 큰 폭으로 상승해 부담을 키웠다. 정부는 지난달 시장에 매일 배추를 100톤씩 공급했지만, 작황 부진으로 인한 가격 급등을 막기에는 역부족었다.

외식 물가 상승(3.0%)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떡볶이(5.8%), 생선회(5.4%), 치킨(5.3%), 김밥(5.0%) 등 소비자들의 단골 외식 품목의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크게 올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달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이 3개월 연속 2%대를 기록했지만, 많은 국민들은 괴리감을 느끼고 있다. 서울 중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민아(34)씨는 “점심값, 커피값, 배달비 등이 다 오르면서 사내에 도시락 열풍이 불고 있다”며 “저녁에도 주로 집밥을 해 먹는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다민(31)씨도 “카페에 가도 조각 케이크 하나에 1만원에 달해 놀라곤 한다”며 “물가가 안정적이라는데, 이를 실감하기 어렵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사립대 절반 이상이 등록금을 올리면서, 대학생과 학부모는 등록금 부담까지 커진 상황이다. 지난달 사립대학교 납입금은 전년 동월 대비 5.2% 상승했다.

◇ 대규모 산불, 농산물 물가에 악재…정부 “피해 규모 파악 후 신속 대응”

지난달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대규모 산불은 향후 농산물 물가에 악재가 될 전망이다. 한국물가협회는 “(산불 영향으로) 공급 불안정에 따른 가격 상승세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지난달 21일부터 30일까지 11개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경북에서는 여의도 면적의 5배에 해당하는 과수원 1490㏊(헥타르·1㏊는 1만㎡)가 소실됐고, 기타 작물은 56㏊가 사라졌다. 산불 피해 지역은 봄배추, 마늘, 건고추, 사과, 자두의 주산지로, 향후 농산물 물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산불을 비롯한 재해가 인플레이션은 물론, 가계와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경고도 이어진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지난 1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에 1월 LA에서 발생한 산불 영향이 0.04~0.09%포인트(p) 있었다”고 추정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기후 변화로 인해 특정 지역에 대규모 피해가 집중된다면, 가계와 기업의 손실이 이들과 연결된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도 일부 품목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신속한 피해 조사와 영향 분석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산불에 따른 농산물 수급과 가격 영향을 최소화하고 피해 농가를 지원하기 위한 재원을 조속히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농작물·가축 등에 대한 재해복구비와 재난지원금을 피해 조사 종료 후 즉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피해 농가가 희망할 경우, 재해보험금을 50% 선지급하기로 했다. 정부는 피해 규모를 면밀히 파악한 뒤, 농산물 수급 안정 지원 등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재정 투입도 검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