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나라 살림살이가 법인세 세입을 중심으로 다소 나아지겠지만, ‘씀씀이’는 기존처럼 억제될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내내 강조하고 있는 ‘재정준칙’을 준수하기 위해 더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 ‘3% 이내’를 처음으로 달성해 보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하지만 재정 전문가들은 ‘현실성’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올해 예산안 대비 15조여원 더 걷힐 것으로 전망한 국세수입 예산부터 너무 낙관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 나라 살림 나아지지만 재정지출 3.2%로 ‘억제’
정부가 27일 국무회의를 통해 확정한 ‘2025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총수입은 올해 대비 6.5% 증가한 651조8000억원으로 잡혔다. 2024년 예산의 총수입이 10년 만에 처음 ‘마이너스’(-)로 편성됐던 것과 비교하면, 내년엔 괄목할 만한 세수 증가세가 예상되는 것이다.
총수입을 구성하는 국세수입 중 ‘법인세’가 크게 증대될 것으로 보이는 점이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내년 국세수입 예산은 올해 예산(367조3000억원)보다 15조1000억원 증가한 382조4000억원으로 편성됐다. 법인세(+10조8000억원)와 부가가치세(+6조6000억원)·소득세(+2조2000억원) 등 세목이 견인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렇듯 내년 다소 나아진 살림살이에도, 정부는 총지출 증가율을 3.2%로 한정했다. 내년 677조4000억원으로 편성한 것이다. ‘역대 최저’(2.8%)로 총지출 증가율을 억제했던 올해보다 겨우 0.4%포인트(p) 늘린 데 그쳤다. 이를 위해 재량 지출과 일부 경직성 경비 등에서 24조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정부가 씀씀이를 아껴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한 이유는,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으로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사회보장성기금 수지) 비율 -3% 이내’의 재정준칙을 지키겠다는 목표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올해 -3.6%로 예상되는 해당 비율을 내년엔 -2.9%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올해보다 내년 수입이 확 늘거나, 지출을 확 줄여야 한다.
◇ 내년 국세수입 15兆 더 들어온다는데… “글쎄”
정부는 재정준칙 준수가 가능한 이유로 내년도 ‘세수의 호조’를 꼽는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기업 실적 호조 영향으로 법인세가 올해 예산보다 10조8000억원, 임금 상승·취업자 증가·기업 실적 개선으로 근로·배당 등 소득세가 2조2000억원 늘 것으로 예상된다”며 “부가가치세도 민간소비 증가·수입 확대에 따라 6조6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올해 예산보다 내년 세수가 크게 줄 것으로 예상된 세목은 세법 개정의 영향을 받는 상속증여세(-1조9000억원)·증권거래세(-1조5000억원) 정도였다.
정부 예상만큼 수입이 들어오지 않으면 재정 준칙 달성은 요원해지는 상황에서, 이런 세수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우선 정부는 ‘2024년도 예산’ 기준으로 수입 증가분을 계산하고 있는데, 올해 세수가 예산에 크게 못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올 상반기 국세는 지난해보다 10조원가량 덜 걷혔는데, 하반기에 작년만큼 세금이 걷히더라도 20조~30조원의 ‘세수 펑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025년 총수입이 예산만큼 걷히려면, 올해 ‘펑크’ 난 만큼의 추가 수입이 필요한 셈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추산한 올해 세수결손만 23조원가량”이라며 “이를 기준으로 삼으면 내년도 수입 전망치는 너무 많이 커진다. 기재부가 기준점을 겸손하게 잡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법인세 다음으로 세수 증가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부가가치세 세목은 ‘민간소비 활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고금리 장기화로 위축된 내수가 언제 살아날지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내수 회복의 전제조건인 기준금리 인하 결정을 위해서는 부동산·가계부채 자극 우려가 어느 정도 일단락돼야 한다고 한국은행은 판단하고 있으며, 금리 인하 이후에도 그 효과가 내수로 이어지기까지는 시차가 필요하다. 게다가 물가 상승에 따라 부가가치세가 늘어나는 구조인 만큼, 향후 물가 안정화 추세도 세수에 부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 무작정 깎아주기만 하는 세금… 재정준칙 가능한가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세금 깎아주기’를 매년 늘리고만 있다. 내년 국세 감면액은 78조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 수준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 해 걷어야 할 세금(국세 수입 전망치+국세 감면액) 중 감면액이 차지하는 비율인 국세 감면율은 15.9%로, 2023·2024·2025년 3년 연속 법정 한도(직전 3년 국세 감면율 평균+0.5%p)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정부의 재정준칙 준수가 ‘무리한 목표 설정’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우 교수는 “기준년도 개편으로 GDP(분모)가 늘면서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줄이기 수월해졌을지 몰라도, 수입 전망이 거짓이라면 달성은 어렵다”면서 “관리재정수지 목표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기재부가 책임지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무리한 목표를 설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 수출이 살아나서 기업들이 법인세를 많이 낼 것이라고 하지만, 연이은 감세 조치로 세금이 이미 많이 깎인 상태”라며 “무조건 재정지출을 줄이는 방향으로만 나아가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재정이 현재 제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내년도 예산안에는 생계급여 인상, 노인 일자리 증대, 소상공인 성장·재기, 반도체 종합 지원, 연구개발(R&D) 지원, 일·가정 양립 등 당면한 민생 문제들의 해결에 초점을 맞춘 사업들이 편성됐다. 김동일 기재부 예산실장은 “정부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면서도, 약자 복지 등에는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등 ‘해야 할 일’은 하고 있다”며 “재정이 경기 회복을 제약한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