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에 대한 실거주 의무를 3년 유예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제 막 의사봉을 두드린 새 법안이지만, 이 법의 유효기간은 길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유예 기간이 전세 시장 상황과 맞지 않게 설정돼 시장에서 ‘맞지 않는 옷’이라는 평가를 받는 데다, 부동산 시장 상황과 개인의 재산권 등을 고려했을 때 ‘실거주 의무’를 유지할 명분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에서도 당초 원안이었던 ‘실거주 의무 폐지’ 추진에 대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정부 안팎에선 4월 총선 이후 정부·여당이 ‘실거주 의무 폐지’를 재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정부 ‘실거주 의무 폐지’ 의지 여전… 시장서도 “과잉 입법” 힘 실어줘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주택시장 연착륙을 위한 정책으로 분양가 상한제 주택에 대한 실거주 의무 폐지를 추진했다. 고금리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실거주 의무라는 규제를 풀어 입주 예정자들의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취지였다. 국민의 주거 이전과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실거주 의무의 맹점도 꼬집었다.
하지만 야당에선 실거주 의무를 폐지할 경우 전세금을 이용한 갭투자가 살아나고, 이는 부동산 투기로 이어질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1년 이상 공방이 계속됐고, 결국 여야는 폐지 대신 ‘3년 유예’로 합의해 법안을 처리했다.
6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주택법 개정으로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 주공 재건축) 등 실거주 의무가 부여됐던 4만4000가구의 급한 불은 껐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 가장 먼저 문제로 지적하는 부분은 전세 계약이 통상 2년 단위로 이뤄지는데, 이번 개정안은 실거주 유예 시점을 3년으로 잡았다는 점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상 계약갱신청구권(2+2) 사용을 둘러싸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이 생길 여지가 크다고 부동산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전세 계약이 2년 단위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기간을 3년으로 특정한 것 때문에 추후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로 인한 마찰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유예 기간이 상당히 애매하다”고 했다.
정부에선 당초 이러한 시장 상황을 고려해 유예 기간을 4년으로 하자고 야당에 요구했다. 하지만 야당에서 ‘3년’을 고집하면서 무산됐다.
부동산 업계에선 당초 원안대로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법을 재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 교수는 “공공주택의 경우 실거주 의무가 의미가 있겠지만, 민간 주택에까지 이를 요구하는 것은 과잉 입법이다. 폐지가 올바른 수순”이라면서 “청약 당첨자는 거의 대부분이 무주택자다. 이들이 실거주를 하지 않고 전세를 내주는 것은 당장 자금 사정이 어렵다거나, 청약시점과 입주시점에 근무지 변경 등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서다. 이를 투기세력으로 몰아 실거주를 의무화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강조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3년 유예 조치가 현 시점에서는 (입주자들에게)긍정적 결과이지만, 결국은 미봉책이라는 한계가 있다”면서 “입주할 돈이 없어서 일단 전세를 주고 전세금으로 잔금을 치를텐데, 3년 유예기간 동안 해당 전세금만큼의 돈을 저축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현재의 정부 정책 방향대로 실거주 의무는 폐지하거나 해당 주택을 매도하기 전까지 실거주 의무를 충족하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했다.
정부 내에서도 ‘실거주 의무 폐지’에 대한 정책 의지는 여전하다. 다만 개정안이 국회를 막 통과한 시점에 실거주 의무 폐지를 재추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부담이 크다. 이와 관련, 국토부 관계자는 “개정안이 이제 막 국회를 통과한 시점에 재개정을 말하는 것은 다소 이른감이 있다”면서 “국민 여론과 시장 반응 등을 살펴보고 실거주 의무 폐지 재추진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보유·거주‘ 나눈 ‘장기보유특별공제’도 관심 쏠려
실거주 의무와 함께 도입된 1가구 1주택자 장기보유특별공제의 ‘보유·거주’ 분리 적용을 종전대로 ‘보유’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아파트 실거주 의무 도입과 함께 소득세법상 1세대1주택자가 3년 이상 주택을 보유할 경우 보유기간을 적용해 연 8%씩 공제하던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보유 4%, 거주 4%’로 분리하는 방식으로 개정했다. 해당 소득세법 개정으로 실거주를 하지 않은 1세대1주택자는 주택 매도시 양도소득세 감면을 절반밖에 받지 못한다.
보유와 거주를 분리한 장기보유특별공제는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주택 청약 당첨자의 실거주 유도를 위해 개정됐다는 점에서 실거주 의무의 ‘쌍둥이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세제 당국은 해당 법의 원복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세제실 고위 관계자는 “실거주를 유도한다는 취지는 동일하지만,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면서 “실거주 의무 폐지는 입주 단계의 어려움을 해소하자는 취지인 반면, 장기보유특별공제는 주택 처분으로 얻는 수익에 세금을 얼마나 부과해야 하는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거주기간에 관계없이 보유기간만으로 양도소득세 특별공제를 할 경우, 부동산 투기 열기를 자극할 수 있다”면서 “부동산 시장이 심각한 거래 절벽을 맞았을 때 소생술 차원에서 검토해볼 수는 있겠지만, 현재 그런 시기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장 전문가도 “실거주 의무와 장기보유특별공제는 상황이 다르다”면서 “투기 억제 차원에서 실거주를 유도하는 것은 적절한 부동산 정책이다. 보유하기만 한 사람과 거주를 한 사람에 대한 세율을 달리하는 것은 실거주자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