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 휴업일 폐지와 온라인 배송 허용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2년 전 공정거래위원회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가 흐지부지된 규제 개혁 사안인데요. 이번 논의 과정에서 공정위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새해부터 정부 부처별 업무보고를 대신해 대통령실이 생중계 형식의 민생 토론회를 야심 차게 진행 중인데요. 이 와중에 이슈를 주도하고 선점하기 위한 부처 간의 은근한 경쟁 심리도 감지되는 분위기입니다.
28일 세종 관가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은 지난 22일 서울 동대문구 홍릉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열린 ‘다섯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통해 이런 내용의 대형마트 영업 규제 완화안을 발표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모은 건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도록 하는 원칙을 폐기한다는 방침입니다. 평일에 휴업할 수 있도록 해 국민 불편을 줄이겠다는 것이지요. 또 현행법에서는 대형마트가 이런 정기 휴업일을 비롯해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요. 이 시간엔 온라인 배송 또한 금지돼 마켓컬리·쿠팡처럼 홈플러스 등은 ‘새벽 배송’ 서비스가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이 규제도 완화하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입니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약 1년 반 전 공정위가 처음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사안이기 때문이지요. 2022년 당시 공정위는 시장 경쟁을 제한해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규제 개선 과제 44개를 발굴했습니다. 그중 가장 전면에 내세웠던 것이 의무휴업일 온라인 배송 규제 완화입니다. 전임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해 윤석열 정부가 적극적으로 기업 규제 혁신에 나서겠다는 기조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2012년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자는 취지로 유통산업발전법에서 대형마트를 규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새벽 배송 서비스를 내세우는 각종 신생 플랫폼 업체들이 등장하자, 되레 대형마트에 이것이 경쟁 제한 요소로 작용해 차별의 소지가 있다는 공정위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공정위의 대형 마트 규제 완화 추진을 계기로 당시 공휴일 의무 휴업 폐지도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흐지부지됐습니다. 소상공인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등 찬반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던 탓이지요. 잠잠해졌나 싶었던 이 논의는 1년여가 흐른 뒤 민생 토론회에서 정부 역점 규제 개선 과제로 제시되며 재점화했습니다. 이번엔 산업부가 ‘키’를 잡았습니다. 소관 부처인 산업부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일견 당연한 일이지만, 이 과정에서 공정위와의 논의가 전혀 없었다고 하네요.
한 정부 관계자는 “과거 공정위가 운을 띄운 과제였는데, 갑작스레 대통령실 이벤트를 계기로 다시 탄력이 붙은 모양새”며 “이 과정을 전혀 몰랐던 공정위로서는 당혹스럽기도 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공정위는 내심 서운한 모습입니다. 공정위는 매년 시장 경쟁 질서를 저해하는 규제 개혁 사례들을 발굴해 추진 과제로 내놓는데, 그때마다 규제 담당 부처들은 시큰둥하거나 비협조적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왠지 공을 빼앗긴 느낌마저 들 수 있는 것이죠.
일각에선 공정위가 윤석열 정부 들어 ‘경제 사법기관’으로서의 역할이 부각된 것의 단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옵니다. 지난해 조직을 ‘사건’과 ‘정책’으로 전격 분리한 공정위는 점차 사건 조사권을 강화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비교적 정책의 존재감이 희미해지다 보니, 규제 개혁 추진에 있어서 공정위의 주도권이 약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사실 누가 키를 쥐든, 결론적으로 소비자의 후생을 향상시키기 위해 정부가 노력한다는 점만은 분명히 반길 만한 일입니다. 다만 이해 당사자들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느리게나마 절차가 추진되던 와중에, 정책 홍보를 위해 무리하게 이슈를 강행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점은 다소 우려스러운 지점입니다. 대형마트 규제 완화 방안을 비롯해 정부가 이번 민생 토론회를 통해 내건 정책들 대부분이 법 개정 사안입니다. 그저 인기를 얻기 위해 띄우고 마는 단발성 이슈인지, 민생을 위한 불가피한 결단이었는지는 앞으로 정부가 얼마나 진정성 있게 국회를 설득하느냐에 따라 판가름나지 않을까요.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