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기획재정부 관료로 일하다 경제부시장을 거쳐 경영학부 교수로 강단에 선 사람이 있다.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이다. 그런 그에게 이제는 ‘소설 작가’라는 특이한 이력이 한 줄 더 추가됐다. 장편 경제 소설 ‘머니 스토리’를 펴내면서다.

기재부에서 대외경제협력관·국제금융심의관 등을 거친 국제금융 정통 관료였던 조 교수는 공무원 시절부터 틈틈이 글을 썼다. 당시 경제부총리들의 ‘스피치라이터’(speechwriter·연설 작가)로 보좌하며 박수갈채를 받았던 뿌듯한 기억이 글쓰기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기재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머니게임’의 시나리오를 감수한 경험도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했다.

그간 경제학 서적을 숱하게 펴낸 그이지만, 소설 집필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과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경제인데, 어떨 때는 그것을 말하는 방식이 굉장히 낡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4차 산업, 빅테크,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거버넌스에 대한 고민을 전문가뿐 아니라 이 시대 사람들과 함께 풀어나가고 싶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좋은 수단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 소설이 있어야 한다면, 비전문가보단 전문가가 더 잘 써낼 수 있지 않을까요.” 조 교수는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 16일 서울 동작구 한 카페에서 조 교수를 만나 인터뷰했다. 다음은 조 교수와의 일문일답.

지난 16일 서울 동작구에서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을 만나 인터뷰하는 모습. /박소정 기자

ㅡ왜 글을 쓰기 시작했나.

“윤증현, 박재완 전 기재부 장관의 스피치라이터였다. 당시만 해도 딱딱한 공무원식 스피치가 일반적이었는데, 드라마나 영화 소재를 끌어와서 연설문을 써드렸다. 윤증현 장관은 국제 행사에서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어떤 날은 선배로부터 건배사를 쉽게 써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감사한 분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내 글’을 써서 드리는 게 좋았다. 자신감이 생겼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 글쓰기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ㅡ‘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빅테크 수업’ 등 1년에 1권씩은 책을 펴내고 있다. 대부분 경제학 저서였는데, 어쩌다 소설을 쓰게 된 건가.

“공무원 시절부터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국제금융 업무를 하다 보니 외국에 나가 있는 기간이 길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기재부 청사가 세종시로 이전해 있었고, 서울 집에서 SRT로 출퇴근하며 노는 시간이 생겼다. 그때마다 틈틈이 소설을 썼다.

또 하나는 기재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머니게임’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그 작가가 나에게 감수를 받았다. 토빈세, 외화 건전성 3종 세트 등 기존 시나리오에서 잘못 다뤄지고 있는 부분에 대해 바로 잡아주기도 했다. 그런 경험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쓰는 데 관심이 생겼던 것 같다.”

ㅡ‘머니스토리’도 그때 쓴 건가.

“이번에 낸 소설은 1~3권, 약 120개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는데, 사실 근래 뚝딱 만든 건 아니다. 당시 한창 기차에서 오가며 썼던 이야기가 1편 ‘비트코인 탄생과 좌절의 비화’다. 2016~2018년 비트코인이 갑자기 부흥했다가 추락해버린 때였다.

2편은 대체불가능토큰(NFT), 3편은 메타버스를 소재로 하고 있다. 기재부 공무원으로, 울산 경제부시장으로 일하면서 그때마다 이슈가 됐던 새로운 경제 도구들이다.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욕망 혹은 신뢰 등 사회적·철학적 의미에 대해 소설로서 다루고 싶었다.”

ㅡ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건가.

“암호화폐를 예로 들면 이런 거다. 처음 비트코인이 선한 의도로 만들어졌을지 몰라도, 반드시 선한 결과로만 귀결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이 끼어들면서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투기와 버블이 그런 것이다.

예전에 ‘비트코인은 아이들을 병들게 만드는 것이다’라며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이 암호화폐를 악으로 규정하고 금지하겠다고 한 적 있었다. 당시 국제 금융 업무를 하면서 이 논란에 대해 다른 나라 관료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외국에선 규제 필요성은 느끼지만,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측면에선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새로운 경제 도구의 출현을 마냥 악으로만 바라보고 규제만 할 게 아니라, 세상의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전향적으로 토론하는 태도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본다.”

ㅡNFT와 메타버스 편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이야기는 뭔가.

“NFT 그리고 현실 세계를 대체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불러오는 메타버스는 인간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가상 부동산, 가상 자산 등에 투자하며 어김 없이 소유욕과 탐욕을 드러내고 있다. 가상 인간이 연예계에서 활동하며 진짜 인간을 대체하려 하는 시대다. 가장 큰 화두로 삼아야 할 것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인간성’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13일 출간된 경제 장편소설 '머니 스토리'. /왓츠비 제공

ㅡ경제 소설이란 장르가 생경하다. 경제 소설이 필요한 이유가 뭘까.

“모든 소설가가 경제학자는 아니잖나. 경제 소설이 있어야만 한다면 비전문가보단 경제학 지식을 녹여낼 수 있는 전문가가 더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과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경제인데, 어떨 때는 그것을 말하는 방식이 매우 낡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4차 산업·빅테크·ESG 등 새로운 거버넌스에 대한 고민을 이 시대 사람들과 함께 풀어나가고 싶고, 더욱 가깝게 느껴지게 하고 싶다. 그 도구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ㅡ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계속 글을 쓸 거다. 1년에 1권은 꼭 책을 펴내려고 한다. 책 100권 쓰기가 버킷리스트다. 미래 세대를 위해 공직이든 교수든 작가든 다양한 일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