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정식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경제부처 차관 인사의 특징은 ‘문재인 정부 고위직과 선 긋기’로 요약된다. 문 정부가 지난 5년간 고수한 확장적 재정 운용 기반의 선심성 경제정책에 일조한 관료보다는, 재정 건전성 강화와 과감한 규제 개혁 등 윤석열 당선인의 국정 운영 철학에 적극 협조할 수 있는 인사를 전진 배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획재정부 출신의 재정 전문가인 조규홍 유럽부흥개발은행 이사를 보건복지부 1차관으로 발탁한 게 대표적인 장면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5월 6일 대통령실로 사용하게 될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 MB·박근혜 정부 중용 인사와 외부 전문가 낙점

9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새 정부 1기 내각의 15개 부처 20개 차관급 인선을 발표했다. 이 중 경제부처 차관 내정자의 면면을 보면 윤 당선인이 추구하는 경제정책의 방향성과 맞닿은 인물 상당수가 포진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기재부 1차관으로 내정된 방기선 아시아개발은행(ADB) 상임이사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제34회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방 내정자는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4년 주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관 부총영사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선임행정관을 맡는 등 중용된 바 있다. 이 때문에 문 정부에서는 전(前) 정권 인사로 분류되기도 했다. 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기재부로 돌아온 방 내정자는 정책조정국장과 혁신성장본부 팀장을 겸임하며 규제 개선, 창업·벤처 지원 등을 주도했다. 기재부 안팎에서는 방 내정자의 이런 경험이 민간 중심의 경제 활성화를 지향하는 새 정부 경제정책에 부합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으로 내정된 장영진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원장은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대구 달성고와 경희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은 정통 산업 관료다. 장 내정자는 산업부에서 가스산업과장, 에너지자원정책관, 투자정책관, 산업혁신성장실장 등을 두루 거쳤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장 내정자는 이창양 산업부 장관 후보자와 함께 에너지 정책 전면 수정, 실물경제 지원 등의 산업부 미션에 드라이브를 걸 적임자로 꼽힌다.

윤 당선인은 통상 이슈를 주도할 통상교섭본부장 자리에는 아예 외부 전문가인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앉혔다. 일각에서 윤성덕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이 차기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유력하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사실이 아니었다. 국제 통상과 경제 분야에서 이론과 실무 경험을 두루 쌓아온 안 내정자는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과 대통령자문 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금융분과 자문위원 등을 맡았다.

(윗줄 왼쪽부터) 기획재정부 1차관 방기선, 2차관 최상대, 교육부 차관 장상윤, 외교부 1차관 조현동, 2차관 이도훈, 통일부 차관 김기웅, 국방부 차관 신범철. (가운데줄 왼쪽부터) 행정안전부 차관 한창섭, 재난안전관리본부장 김성호,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전병극,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김인중,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장영진, 통상교섭본부장 안덕근, 보건복지부 1차관 조규홍. (아랫줄 왼쪽부터) 보건복지부 2차관 이기일, 환경부 차관 유제철, 고용노동부 차관 권기섭, 국토교통부 1차관 이원재, 해양수산부 차관 송상근,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조주현, 대통령 비서실장 직속 부속실장 강의구. / 연합뉴스

◇ 지출 16% 차지 복지부 차관에 기재부 재정 전문가 보내

정부 안팎에서는 윤 당선인이 복지부 1차관으로 조규홍 유럽부흥개발은행 이사를 임명한 걸 주목한다. 문재인 정부 식의 무분별한 돈 풀기를 지양하고,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겠다는 윤 정부 경제정책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이유에서다. 정부 한 관계자는 “복지 예산 지출이 큰 복지부 차관 자리에 기재부 출신 재정 전문가를 앉힌 건 윤 당선인이 돈을 쓸 땐 쓰더라도 재정 규율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행시 32회로 공직에 입성한 조 내정자는 기재부에서 예산총괄과장, 경제예산심의관, 재정관리관(차관보) 등을 역임했다. 이번 인수위에도 경제1분과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를 기재부 2차관 후보로 언급하기도 했다. 복지부 1차관 업무 중에는 국민연금이 포함돼 있다. 조 내정자는 윤 정부의 연금 개혁 작업에도 힘을 보탤 전망이다.

기재부 출신 복지부 차관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5년 당시 방문규 기재부 차관이 복지부 차관에 임명된 바 있다. 앞서 2006년에는 기재부 출신인 변재진 전 복지부 장관이 차관을 거쳐 장관 자리에 올랐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복지부 예산이 정부 총지출액의 16%에 육박할 정도로 불어났다”며 “팬데믹 종식에 맞춘 정책 지원과 예산 운용에 (조 내정자가)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