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판매자(한국전력)가 생산자(발전사)로부터 사들이는 전력도매가격(SMP)이 최근 킬로와트시(kWh)당 200원(일평균 기준)을 넘나들고 있다. 1월 평균 SMP가 154.42원인데, 불과 일주일 만에 50원가량 치솟은 것이다. 정부 내부에서는 2월 평균 SMP가 사상 처음 200원을 돌파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SMP 급등의 원인인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당분간 상승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이고, 국제유가도 배럴당 100달러를 향해 달리고 있어서다. 시장에서는 에너지 가격 급등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이(E)플레이션’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우려가 나온다. E플레이션은 에너지(Energy)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 우크라 사태 나비효과…전력도매가 200원 돌파
7일 산업통상자원부·한국전력거래소 등 에너지 관련 부처에 따르면 이달 평균 SMP는 사상 최초로 200원을 웃돌거나 그에 육박하는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월평균 SMP가 가장 높았던 건 10여 년 전인 2012년 7월의 185원이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한파로 동절기 전력 수요가 여전한 상태고, 국제유가·LNG 등 에너지 가격 상승세도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며 “이 흐름대로면 월평균 200원 돌파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이 내부에서 나온다”고 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월평균 SMP(육지+제주)는 작년 4월 76.35원을 시작으로 매월 상승세를 지속했다. 지난해 10월 107.76원으로 100원을 넘더니 올해 1월에는 154.42원까지 치솟았다. 가격 급등세는 이달 4일 육지 기준 SMP가 207.73원으로 최고점을 찍으면서 더 가팔라졌다. 작년 2월 4일 가격(76.7원)과 비교하면 170.8% 상승한 셈이다. 제주 기준 SMP는 7일 242.91원까지 올랐다.
한국가스공사(036460)가 2월 LNG 열량단가(연료단가)를 전월보다 28.1% 인상한 게 SMP 급등으로 이어졌다. SMP는 LNG 가격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다. LNG 가격은 우크라이나를 두고 미국·유럽연합(EU) 등 서방국과 대치 중인 러시아가 EU로 향하는 배관천연가스(PNG) 공급을 줄였고, PNG 재고가 줄어든 유럽이 LNG 주문량을 늘리면서 솟구쳤다. EU는 천연가스 수입량의 40%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한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던 가스전의 생산 능력도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이 영향으로 유럽 천연가스 가격 지표인 네덜란드 TTF 현물 가격은 올해 초 메가와트시(㎿h)당 70유로에서 현재는 90유로 수준으로 올랐다. 동북아 천연가스현물가격(JKM)을 보면, LNG 거래 가격은 작년 1월 열량단위(Mmbtu)당 8달러 선에서 올해 2월 현재 약 36달러로 4배 이상 급등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LNG 현물 수입 가격은 톤(t)당 892.03달러로, 전년 대비 148.85% 올랐다.
◇ 현실이 된 E플레이션…소비자물가 4% 넘어서나
정부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과 공급망 차질 심화, 그에 따른 수급 불균형과 원자잿값 급등 등으로 이미 인플레이션 우려가 현실이 된 상황인데,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초대형 대외 악재까지 겹치면서 E플레이션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다.
우리나라가 작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2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한 배경도 에너지 수입 부담 상승이었다. 당시 산업부는 무역 적자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국제 에너지 시장 흐름에 적잖이 놀란 분위기”라며 “무역 적자 장기화는 물론 3%대로 치솟은 소비자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고 했다.
E플레이션은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이달 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1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6% 상승했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는 작년 4월 2.5%를 시작으로 9월까지 2%대를 지속하다가 10월부터는 3%대를 기록하고 있다. 10개월째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2%)를 초과하는 물가 상승 흐름을 지속 중인 것이다.
문제는 지난달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도 전년 동월 대비 3.0% 상승했다는 점이다. 2012년 1월 3.1%를 기록한 후 10년 만에 최고치다. 근원물가가 올랐다는 건 물가가 공급 측의 일시적 충격으로 급등한 게 아닌, 중장기적 상승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원자재와 농축산물 가격 오름세에서 시작된 물가 대란이 연쇄적으로 공산품과 서비스 가격까지 밀어 올릴 수 있다는 관측이 맞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원자재 공급 원활 등 국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E플레이션(E-flation)
E플레이션은 에너지(Energy)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말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심화한 에너지 자원 수급 불균형이 물가의 지속적인 상승세를 부추기자 E플레이션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환경 규제 강화에 따른 친환경 원자재 수요 증가가 가격 상승을 야기하자 녹색(Green)과 인플레이션을 합친 용어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이 등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최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전운이 감돌면서 E플레이션 공포는 더 커졌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 지표인 네덜란드 TTF 현물 가격은 올해 초 메가와트시(㎿h)당 70유로에서 2월 현재 90유로 수준으로 올랐다. 국제유가도 마찬가지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 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작년 12월 65달러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90달러를 넘어섰다. 시장에서는 국제유가가 12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