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인 근원물가(농산물및석유류제외지수)는 지난달 3%로 올라섰다. 근원물가가 2012년 1월 이후 10년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른 것이다. 국제 유가 상승과 농산물 가격의 급등이 한번 오르면 쉽사리 내려가지 않는 외식 등 서비스업과 공산품 가격의 인상으로 옮겨붙었다.
근원물가의 기조적 상승은 물가가 일시적인 공급측 충격에 따라 급등하는 것이 아닌, 장기적인 상승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가 상승세를 더욱 자극할 것으로 관측되는 요인은 잠시 주춤했던 국제 유가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찍으면서, 공급측 물가 상방 요인이 확대돼 소비자물가 오름세를 부채질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서 물가를 밀어올린 것과 비슷한 흐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개인서비스·가공식품 가격 상승
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1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6%, 전월 대비 0.6% 상승했다. 서비스, 공업제품, 농축수산물, 전기·수도·가스 모두 상승한 데 따른 것이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4월 2.5%를 시작으로 9월까지 2%대를 지속하다가 10월부터 3%대를 기록하고 있다.
근원물가, 즉 농산물및석유류제외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 전월 대비 0.5% 상승했는데, 전년 동월 대비로 2012년 1월(3.1%)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근원물가는 계절적 요인이나 일시적인 충격에 의해 영향을 크게 받는 농산물 및 석유류를 제외한 물가상승률로 전체 458개 품목 중 농산물과 석유류 관련 품목을 제외한 401개 품목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8월까지 1%대를 유지했던 근원물가의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같은 해 9월 2%를 찍은 후 10월 2.8%, 11월 2.4%, 12월 2.7%로 2%대를 유지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비교 기준인 식료품및에너지제외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6%, 전월 대비 0.6% 상승했다. 2015년 12월 2.6% 오른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이다.
근원물가의 상승은 국제유가 등 원자재와 농축산물 가격 오름세에서 시작된 물가 대란이 연쇄적으로 공산품과 서비스 가격을 밀어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증거다. 당초 “일시적 물가 상승”이라고 했던 정부의 예상은 어긋났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일부 품목에 국한되지 않고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근원물가 상승률이 10년만에 가장 컸던 원인은 개인서비스의 오름세 지속과 국제 곡물 가격 상승에 따른 가공식품 가격 인상”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서비스의 경우 전년 동월 대비 3.9% 상승했다. 이 중 외식 물가는 5.5% 올랐다. 외식물가는 지난 2009년 2월의 5.6%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원재료비·최저임금 인상 등 반영, 실손보험료 요율조정 등 연초 가격 인상에 따른 것으로 기획재정부는 분석했다.
집세는 전년 동월 대비로 2.1% 상승했다. 전셋값이 2.9% 올랐는데, 2017년 8월의 2.9% 이후 가장 높았다. 월세는 1.1% 올랐다. 이는 2014년 5월의 1.1%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공업제품은 4.2%, 농축수산물은 6.3% 올랐다.
◇국제유가 급등, 물가 상승...글로벌 금융위기와 전조 비슷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인한 국제 유가 상승에 의해 근원물가의 상승세는 더욱 자극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제 유가는 한번 오르면 장기간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는데, 이는 추후 휘발유, 경유, 자동차용LPG 등 석유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원료비 상승으로 이어져 산업 전반의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3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3월물 서부 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2.01달러(2.28%) 오른 배럴당 90.27달러에 마감했다. WTI가 90달러를 넘어선 것은 2014년 이후 처음이다. WTI는 지난해 50% 넘게 상승했는데, 올해도 한 달여 만에 20% 가까이 올랐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3월물 브렌트유는 1.52달러(1.70%) 상승한 90.99달러였다.
이 같은 유가의 급등세는 앞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앞서 지난 2011년 대외경제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에 국제 유가는 140달러를 상회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차 고유가 시기인 2008년 소비자물가는 4.7%로 2007년(2.5%)보다 큰 폭으로 오르기도 했다. 그러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세계 경기 침체로 확산되면서 2008년 연말에 30달러 수준까지 큰 폭으로 하락했다.
당분간 유가 급등세는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JP모건체이스의 세계 원자재 리서치 책임자인 나타샤 커니버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이 확실히 커졌고, 긴장이 격화되면 유가 상방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다.
한국은행은 앞서 지난 14일 올해 소비자물가 연간 상승률 전망치를 2%대 중반으로 상향 조정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연 2%로 제시했는데, 두 달만에 이를 올렸다. 한은은 앞으로 상당기간 3%대를 상회할 것이라는 관측도 함께 내놓으면서 “근원인플레이션율도 올해 2%를 상당폭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정부와 한은 전망치인 2%중반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