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경기도 화성 톨게이트에서 서쪽으로 약 2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인구 400여명의 작은 마을 ‘백미항’. 마을 입구에는 ‘어촌에 부는 새로운 바람, 어촌뉴딜 백미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손님을 반기 듯이 펄럭였다. 썰물에 맞춰 바닷물이 빠지면서 길이 2km가 넘는 탁 트인 갯벌이 장관을 이뤘다. 한쪽에서는 빨간 모자를 쓴 마을 부녀회 회원들이 음악에 맞춰 신나게 북을 치며 ‘난타’ 공연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작은 어촌마을이라고 하기엔 활력(活力)이 넘쳐보였다.

이 곳은 바지락, 낙지 등 바다에 해산물 종류가 많고 그 맛이 다양하다고 해서 오래전부터 ‘백미(百味)’ 마을이라고 불렸다. 서울 등 수도권과 가까워서 갯벌 체험을 하기 위해 연평균 1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백미항은 해양수산부가 추진하는 어촌뉴딜300 사업을 통해 ‘해양생태계체험마을’로 탈바꿈했다.

◇ “커피숍 하나도 없고” 시설 노후화... 손님 발길 줄어든 백미항의 위기

관광객들이 꾸준하게 찾는 곳이었던 백미항이 어촌뉴딜 사업으로 선정된 배경은 뭘까. 백미리는 화성시내 해안 마을 가운데서도 가장 가난한 마을 중 하나였다.

마을 주민(400여명)의 4분의 1 정도인 108명만 어업 활동에 종사할 수 있는 어촌계원으로 등록됐다. 40대 이하 인구(40여명)비율은 10%를 밑도는 수준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백미리 마을 주민 10명 중 7명은 연간 수익이 2000만원 이하였다. 사실상 시간이 지나면서 마을 소멸될 가능성이 큰 동네였다.

주 수입원은 관광, 어업이었다. 갯벌 체험이 인기를 끌면서 연간 10만명에 육박했던 관광객이 3~4년 전부터 급감하면서, 마을의 유일한 소득원이다시피했던 관광수입도 크게 줄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도 있었지만, 시설 노후화가 백미항의 관광 매력도를 떨어뜨린다는 진단이 나왔다.

임시 가건물 등으로 주차공간은 없었고 갯벌 체험 뒤에는 씻을 장소도 없었다. 특히 일회성 갯벌 체험 만으로는 관광객을 유인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여기에 차 한대 지나가기도 비좁은 단선(單線) 도로 등도 걸림돌이었다.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어촌계 등 마을주민들이 나섰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 모두가 포기하고 하나둘씩 마을을 떠나던 찰나, 2018년 해양수산부가 추진하는 ‘어촌뉴딜300′ 사업이 발표됐다. 마을주민들은 떠나더라도 한번은 해보고 떠나자는 심정으로 사업에 공모를 했다고 한다.

◇ 어촌뉴딜 300사업 선정 후 환골탈태

어촌뉴딜 300 사업으로 리모델링 된 숙박시설 B&B의 모습. 리모델링 이전(위) 모습과 완공(아래)된 모습. /해수부

어촌뉴딜 300은 전국 300개의 어촌·어항에 대한 어촌 필수생활 기반시설(SOC)을 현대화하고 지역특화사업을 발굴, 지역의 활력을 높이기 위한 사업이다. 최근 마지막 어촌뉴딜 300 사업 대상지 50곳을 끝으로 총 300곳의 대상지 선정이 완료된 상태다. 화성시 백미항 어촌뉴딜사업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국비와 지방비 102억4300만원이 투입됐다.

우선 숙박시설인 B·B하우스가 건립됐다. 이 건물에는 총 8호의 숙소가 있고 테라스식 바베큐장도 마련돼, 가족단위 관광객 안성맞춤이다. 또 갯벌체험 이외에도 염전·머드 체험이 가능한 백미힐링마당과 저녁에 지는 붉은 햇빛을 감상할 수 있는 낙조캠핑장이 구축됐고, 시골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산책로도 조성됐다.

주민들을 위해서는 회의나 다양한 목적으로 실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주민공동이용시설(세미나실)도 신축됐다. 또 주변 국도에서 백미항까지 연결되는 2차선 관광도로도 건설 중에 있다. 이 밖에도 농구 코트와 100여대 차량을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도 마련됐다.

해수부는 시설 뿐만 아니라, 역량강화 교육을 통해 주민들도 업그레이드 했다. 실제 마을주민들은 사업 아이디어로 ‘슬로푸드 체험관’을 제시했다. 갯벌에서 갓 잡은 해산물로 직접 파스타를 요리해 먹을 수 있고, 김·감태를 활용한 아이스크림도 판매한다. 복합공간 한쪽에서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소유한 ‘주민카페’가 들어섰다.

백미항 브랜드화를 위해 제작된 통합 로고. 로그를 활용한 에코백 등 다양한 기념품을 제작하며, 관광 유치를 위한 홍무물에도 로고가 사용될 예정이다 /해수부

◇‘백가지 맛 백가지 즐거움’으로 공동 브랜드화... 스마트밴드 결제시스템 도입

이번 백미항 사업의 특징은 단순히 그간 어촌 활성화 정책과는 차이가 컸다. 대표적으로 백미항을 상징하는 로고를 제작했다는 점이다. 그간 관광객들의 기억에 백미항의 상징하는 이미지가 없다는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로고를 제작한 것이다. 로고의 문구인 ‘백가지 맛, 백가지 즐거운, 백가지 행복’도 주민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해수부는 로고를 바탕으로 백미항을 브랜드화 한다는 계획이다. 실제 이날 현장에서는 백미항 로고를 기반한 에코백 등 다양한 기념품이 전시돼있었다. 첨단 정보통신기술(ICT)도 활용됐다. RFID를 이용해 스마트팔찌 시스템을 도입했다. 갯벌 체험에서 지갑을 가져 나올 경우, 분실의 위험이 높고 한번 잃어 버리면 찾기도 쉽지 않다. 또 직판매장이나 카페, 매점 등에서도 지갑이 필요없이 스마트팔찌로 결제가 가능하다.

문성혁 해수부 장관이 백미항 어촌계에서 어촌뉴딜300 사업을 통해 설치된 스마트밴드 결제시스템을 살펴보고 있다. /박성우 기자

이 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더욱 안전하고 편리하게 어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로와 해안 안전펜스가 신설되고 어획물을 보관하거나 가공하는 공동 작업장도 새로 생겼다. 마을에 기반시설이 재정비되자, 주민들은 합심해서 새로운 특산물을 개발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속속 내놨다. 대표적으로 꼬막 양식이었다. 작업장이 건설되면서 백미항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귀어인들도 하나둘씩 늘어나는 추세다.

이미 백미항에도 6명이 수산직불금제도를 위해 귀어를 신청해둔 상태다. 경영이양 직불제는 어촌계원 자격을 50세 이하 젊은 후계 어업인에게 이양하는 경우 2~10년간 직불금을 지급, 고령 어업인의 노후안정 및 청년 등 신규 유입하는 제도다. 이들 6명은 교육과 마을사업 참여 등 일을 배운 뒤 1년 후 귀어를 인정받는 일종의 인턴기간을 보내고 있다.

백미항에서 설치된 꼬막 세척공장의 모습. 백미항에서는 꼬막양식에 성공해, 하루에 6톤씩 꼬막을 출하하고 있다. /박성우 기자

문성혁 해수부 장관은 “백미항은 어촌계가 나아가야 할 가장 모범사례로 생각한다. 어촌 지역 주민들의 소득을 높이고 마을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어촌뉴딜300 사업을 통해 백미항이 어업, 가공, 유통, 관광 등이 접목된 융·복합 6차산업을 선도하는 어촌마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백미항에 다시 관광객이 많아지고 활력 넘치는 마을이 되기를 기대한다. 유입 인구는 곧 정주 인구로 이어지면서 어촌소멸을 대응하는 대표적인 롤모델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해양수산부는 최근 마지막 어촌뉴딜 300사업 대상지 50개소를 발표, 총 300개소의 대상지 선정을 완료했으며, 후속사업으로 올해부터는 신규 인구 유입, 어촌 생활서비스 지원을 강화한 ‘포스트 어촌뉴딜’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이를 통해 낙후된 어촌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 소멸 등 어촌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원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