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1일 국무회의를 열어 14조원 규모의 올해 첫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확정했다. 14조원 중 80.7%인 11조3000억원은 적자국채를 발행해 충당한다. 이로 인해 국가채무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해 1076조원 가까이 불어나게 됐다. 국민 1인당 국가채무도 최초로 2000만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가채무는 400조원 넘게 급증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재정 건전성이 여기서 더 악화할 수 있다. 여야 대선 후보 모두 추경 규모를 정부안보다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서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적자국채 발행 규모가 커질 수 있다. 차기 정부가 출범하면 경기 활성화를 이유로 추경에 또 나설 가능성도 크다. 전문가들은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므로 재정 건전성에 더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시민들이 서울 시내 아파트 밀집 지역을 걷고 있다. / 연합뉴스

◇ 文정부 5년간 추경만 151.3조원

정부가 6.25 전쟁 때인 1951년 1월 이후 71년 만에 1월 추경을 실시하면서 문 정권 5년간 총 추경 규모는 151조3000억원을 기록하게 됐다. 횟수로는 10번째 추경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총 5회·17조1000억원), 이명박 정부(총 2회·33조원), 박근혜 정부(총 3회·39조9000억원) 등 이전 3개 정권의 추경액(90조원)을 모두 합친 것보다 61조원 이상 많은 액수다.

문 정부는 2017년 출범 직후 일자리 창출과 서민 생활 안정,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지원 등을 이유로 11조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다. 2018년과 2019년에는 각각 청년 일자리 지원과 미세먼지 대응을 위해 3조9000억원과 5조8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실시했다.

나머지 7번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사태가 터진 2020년 이후 2년간 이뤄졌다. 이 기간에 편성된 누적 추경 규모는 130조6000억원으로, 문 정부가 편성한 전체 추경의 86.3%에 이른다. 이 중 3번은 대규모 선거 직전에 추진됐다. 2020년 총선,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그리고 2022년 대선이다. 추경 만능주의와 표심(票心) 매표(買票)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 1인당 국가채무(2022년 1월 20일 기준). / 국회예산정책처

◇ 문 정부가 발행한 적자국채만 237조원

최근 2년 동안 3개월에 한 번꼴로 추경이 편성되면서 재정 건전성은 빠르게 악화했다. 문 정부는 출범 이후 지난해까지 9차례 추경을 실시하면서 225조7000억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했다. 이번 10차 추경에서 11조3000억원이 추가되면 총 적자국채 규모는 237조원으로 불어난다.

덩달아 국가채무도 빠른 속도로 늘었다. 우리나라 국가채무 규모는 문 정부 첫해이던 2017년 660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965조3000억원으로 커졌다. 4년 만에 305조원(46.2%) 불어난 것이다. 본예산 기준 올해 국가채무는 1064조4000억원이다. 여기에 적자국채(11조3000억원)를 더하면 2022년 국가채무는 1075조7000억원까지 늘어난다.

한 국가의 재정 건전성을 판단하는 지표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본예산 기준 50%에서 50.5%까지 오를 전망이다.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2017년 36%에서 2018년 35.9%, 2019년 37.6%, 2020년 43.8%, 2021년 47.3% 등으로 매년 상승했다. 문 정부 들어서만 14.5%포인트(P) 올랐다.

국민 한 사람이 짊어지는 나랏빚도 2000만원을 돌파한다. 올해 국가채무를 지난해 말 주민등록 인구(5164만명)로 나누면 1인당 국가채무는 2081만원이 된다. 1인당 국가채무는 2014년 1000만원을 처음 넘어서고 불과 8년 만에 두 배 불어 2000만원을 뛰어넘게 됐다. 국회예산정책처 ‘국가채무시계’에 따르면 1월 20일 오후 8시 기준 1인당 국가채무는 1861만1441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오른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월 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본관 앞에서 열린 '2022 증시대동제'에 참석했다. / 연합뉴스

◇ 비기축통화국인데 채무 가파르게 불어…그래도 정치권은 “돈 풀자”

이런 상황인데도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한목소리로 ”추경 규모를 정부안(14조원)보다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정부가 국회 증액 요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대선 후 즉시 추경을 통해 보완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즉각 추경 협상에 임해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는 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여당은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주요 선진국보다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며 빚을 더 내도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7.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65.8%보다 낮다.

하지만 여기서 달러·유로·엔화 등 기축통화 사용국을 뺀 나머지 기축통화 미사용 국가 14곳의 평균 채무비율을 다시 계산하면 41.8%가 나온다. 이 경우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헝가리·이스라엘·멕시코·콜롬비아·폴란드에 이어 6번째로 높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비기축통화국 정부 채권에 대한 수요는 기축통화국과 비교해 적을 수밖에 없다”며 “한국은 국가채무비율 관리를 엄격히 해야 하는 나라”라고 했다.

한국의 국가채무가 너무 빠르게 불어난다는 점도 문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재정점검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66.7%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 말 기준 51.3%에서 5년 만에 15.42%P 높아지는 것이다. 이는 비교 대상인 35개 국가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