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라면 점유율 1·2위인 농심과 오뚜기가 이달부터 라면 가격을 인상한 가운데, 삼양식품과 팔도가 내달부터 라면 주요 제품 가격을 인상하기로 했다. 원재료와 인건비 등 비용상승을 이유로 대고 있지만, 라면 점유율 상위 4개사가 비슷한 시기에 라면 가격을 인상한 것에 대해서는 가격담합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의 시각도 있다.

경쟁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담합 가능성을 살피고 있는 상황이다. 가격이나 생산량 등 중요정보에 대한 업체간의 정보교환 만으로도 담합을 처벌할 수 있도록 개정된 공정거래법이 시행된 올해부터는 이와 같은 ‘묵시적 담합’도 잡아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개정된 공정거래법의 정보담합 규정이 최근의 라면 등 가공식품 가격 인상 움직임에 적용될 지 여부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16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라면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오뚜기 올리니 너도나도…라면값 동시 인상

23일 정부 안팎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식품 가격의 연쇄적 상승에 업계의 담합이 있었을 가능성 여부를 열어놓고 관찰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달 들어 라면 제조업체들이 이례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가격 인상을 결정한만큼 이같은 조치에 가격 정보교환 등의 담합 가능성이 없었는지도 들여본다는 입장이다.

라면 가격 인상의 시작은 오뚜기였다. 서민식품인 라면 가격만큼은 올리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던 오뚜기는 이달 13년만에 처음으로 라면 가격을 평균 11.9% 올렸다. 원재료값, 인건비와 물류비 등이 늘며 비용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상승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뒤를 이어 농심은 4년 8개월만, 삼양식품 역시 4년 4개월 만에 가격 인상을 결정했고, 팔도도 9년 2개월만에 가격을 올렸다.

지난해 판매액 기준으로 국내 라면 시장 점유율 1위는 농심(53.3%)이고, 이어 오뚜기(22.6%), 삼양(11.0%), 팔도(9.2%) 순이다. 이들 4개사가 한국 라면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데, 한 업체가 가격을 올리자마자 다른업체들이 바로 이를 뒤따르는 형국이다.

소비자 단체 등에서는 지난해 코로나19로 판매량이 늘면서 막대한 이익을 챙긴 식품업체들이 비용 상승 요인을 상쇄할 수 있는 만큼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하고 있다며 인상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 2016년에 걸쳐 소맥이나 팜유 등 원자재 값이 큰 폭 하락할 때는 가격을 인하하지 않았던 점도 반박 요인이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는 모습. /연합뉴스

◇정보교환도 ‘담합’ 인정…공정위 이번엔 다를까

공정위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은 바로 이들 업체들의 가격 정보교환 담합 여부다. 이들이 가격 인상을 결정하기 전에 미리 가격 인상률과 인상 예정일이나 신제품 출시 예정일, 예정 판매가 등 내부 정보를 주고받았다면, 명백한 ‘합의’가 없다고 해도 경쟁을 제한하는 묵시적 담합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라면 정보교환 담합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2012년 공정위는 오뚜기, 농심, 삼양, 팔도 등 라면 제조업체 4개사가 가격과 판매실적 등 경영정보를 상시적으로 교환해 가격 인상에 합의했다며 1300억원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대법원이 정보교환 행위만으로는 담합 인정의 전제 조건인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업의 손을 들었고, 과징금이 전부 취소 처분됐다. 이는 공정위에 ‘뼈아픈 상처’이자 정보교환 담합 논란을 촉발시킨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공정위가 절치부심끝에 작년 말에 국회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정보교환만으로도 담합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담합의 싹을 자르기 위해 경쟁제한 우려가 있는 정보 교환 자체를 금지하고, 담합이 의심될 때는 정보교환 행위를 합의의 결정적 증거로 보는 미국이나 EU등 세계적 추세의 흐름에 맞춘 결과다. 2012년 라면 담합 사건의 대법원 패소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을 마친 셈이다.

이때문에 과거와는 달리 공정위가 라면 제조업체 간의 정보교환 등 일말의 징후를 포착하기만 해도 담합으로 처벌이 가능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업간의 일상적인 정보교환까지 문제 삼겠다는 것이 아니다”면서도 “업체간 가격이나 물량에 대해 직접적으로 정보를 교환한 것이 확인되고, 이로 인해 실제로 나타난 가격 등 현상이 정보 교환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때에는 담합으로 규제를 해야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