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완성차 업계에서 제너럴모터스(GM)의 한국 시장 철수설이 다시 점화되고 있다. GM한국사업장(한국GM)은 지난달 전국 9곳의 직영 서비스센터를 매각하고 부평 공장의 유휴 자산과 일부 시설도 팔겠다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 GM이 한국에서 떠날 준비를 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증폭된 것이다.
한국GM은 “재무구조 개선과 운영 합리화를 위한 조치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에 선을 그었다. 지난 4월 부평 공장의 생산 물량을 2만1000대 늘리는 등 여전히 한국을 주요 생산 기지로 여기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치권과 노동계에서는 한국GM의 자산 매각을 불편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금속노조 한국GM지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일부 정당 의원들은 9일 국회에서 ‘한국GM 구조조정 반대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GM의 결정이 내수 판매를 포기하는 조치라며 구조조정 계획을 철회하고 신차 배정 등 추가 투자와 고용 안정을 위한 대책을 내놓으라고 했다.
한국GM의 철수 가능성이 불거진 표면적인 이유로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부과가 꼽힌다. GM이 지금껏 한국에서 공장을 가동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Free Trade Agreement) 덕에 한국에서 만든 차를 관세 없이 미국에서 판매했기 때문인데, 트럼프 행정부가 4월부터 모든 수입차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이 같은 이점이 사라진 것이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현실화 가능성이 큰 노동 관련법 개정이 GM의 한국 철수 가능성을 더욱 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4일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핵심 공약 중 하나로 제시했다.
노란봉투법은 국내 제조업 기업이 가장 우려하는 노동법 개정안으로 꼽힌다. 이 법은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해 하청업자 근로자들이 원청사를 대상으로 파업에 나설 수 있도록 한다. 또 생산 물량 조정 등 경영에 대한 사안도 쟁의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한국GM의 1차 협력업체 수는 270여 곳으로 2·3차까지 합치면 약 3000개의 협력업체가 있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수천 개의 협력업체가 한국GM을 상대로 교섭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또 한국GM 노조는 신차 배정이나 물량 조정 등을 문제 삼아 파업에 나설 수도 있다. GM 본사 입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로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노사 문제로 골머리까지 앓게 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의 또 다른 공약인 주 4.5일 근무제 역시 기업엔 부담이다. 이 대통령은 ‘노동 존중’을 표방하며 금요일 근무를 4시간 줄이겠다고 했다. 만약 임금 조정 없이 근로 시간만 단축되면 기업들은 생산량 유지를 위해 인력을 추가로 채용해야 한다. 생산직 근로자의 야근과 특근이 많은 완성차 업체들은 추가 수당 지급 부담이 큰 폭으로 늘어나게 된다.
상당수 국내 완성차 기업 및 협력업체는 미국 관세, 경기 침체, 전기차 부진 등 여파로 올해 실적이 작년보다 악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란봉투법과 주 4.5일 근무제 도입은 어려움을 겪는 제조업 기업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
새로운 제도 도입을 통한 근로자의 권익 강화도 기업이 공장을 계속 가동하고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새 정부가 노동계의 요구에만 귀를 기울이면 기업들은 생산 시설의 해외 이전에 더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노동 관련 법안 개정에 속도 조절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