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선옥 기자.

주식을 발행해 기업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장(場)을 의미하는 ‘주식시장’에 들어와 있는 자금은 모든 자원이 그렇듯 희소하다.

미국 주식시장처럼 전 세계 자금을 빨아들이는 곳이라면 혹시 모를까, 국내 주식시장의 경우 무제한으로 투자금을 유지할 수 없다. 기업의 자금 조달과 투자자의 건전한 투자 수익이라는 증시 본연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주식시장에 유입되는 투자금이란 희소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한다는 의미다. 해외 주식과 암호 화폐 등 다양한 자산으로 투자 자금이 전보다 훨씬 활발하게 이동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는 자금이 정말 필요한 곳으로 유입되도록 하는 노력은 더 긴요하다.

그런데 바람과 달리 한국 주식시장이 점점 과포화 상태에 빠지고 있다. 주식시장에 입성하는 기업은 끊이지 않는 데 문제가 있어도 퇴출되는 기업은 적다 보니 상장사 수가 늘어나고만 있다.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종목 수는 2010년 1962개였는데, 지금은 1000개 더 늘어난 2882개에 이른다. 국내 자본시장이 성장하는 만큼 상장사 수도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고, 적정한 상장사 수가 있겠느냐마는 문제 있는 기업의 퇴출이 정체되는 상황을 보고 있으면 우리 주식시장에서 자원 배분이 비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이에 따른 부작용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당장 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라는 주식시장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상장사 주식이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기업공개 작업을 통해 주식시장에 입성한 기업들은 상장 과정을 시작으로 유상증자나 채권 발행을 통해 그때그때 필요한 자금을 조달한다. 꼭 기업공개라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아도 장 외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데도 어렵게 상장 절차를 거치는 이유는 장 내에서 이뤄지는 활발한 거래를 통해 적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와 관련된 인사가 정치권 인사와 맞닿아 있다는 이유로 주가가 급등하고, 회사가 영위하지 않는 허황된 사업 계획을 암암리에 퍼트려 주가가 폭등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는 사례를 보자면, 과연 우리 주식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최근 만난 상장사 관계자는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을 고려해도 자금 조달이 너무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의 하소연이 단순한 엄살이 아니라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보였던 이유는 그가 치열하게 내린 결론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상장사 수가 많다 보니, 투자자의 눈에 띄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했다.

게다가 이 기업은 높은 기술력과 탄탄한 실적을 내세워 IR에 나서고 있는데, 이를 부각시키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같은 업종으로 묶인 상장사 중 해당 기업보다 시가총액이 훨씬 높은 상장사를 비교하며 설명했다. 이 기업은 같은 업종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사업 실체가 명확하지 않고, 회사 주인도 업계에선 유명한 사채꾼이다. 회사는 만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주가는 잊을 만하면 반등한다.

해당 기업은 실적이나 기술력보다 공공연하게 유명 인사와의 연을 강조하고 유명 유튜버를 활용하기도 해 주가를 올리는 효과를 봤다고 한다. 불공정거래를 모의하는 세력에게 타깃이 되는 전형적인 한계 기업의 모습이다. 이런 기업이 주식시장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다 보니 주식시장이 혼탁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거래소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혹은 어렵게 주식시장에 입성한 상장사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 위해 상장 유지 자격을 보수적으로 검토한다. 문제는 이런 기업에 기회를 주는 사이 우량한 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기업의 누적은 주식시장 본연의 기능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자본시장의 경쟁력과 국내 주식에 대한 투자 매력을 저하시킨다.

최근 만난 한국거래소 출신 인사는 문제기업의 퇴출이 오히려 줄어드는 상황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 인사는 상장사와 얽힌 이해 관계자는 많고, 오랜 낙하산 인사 논란으로 한국거래소의 독립성이 점점 낮아지면서 문제기업을 퇴출시키는 작업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거래소가 정은보 이사장 취임 이후 부실·한계기업 퇴출을 강화하겠다고 했고, 일부는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 크게 체감할 정도는 아니다.

문제기업을 솎아내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작업이다. 지금 운영되는 상장폐지 원칙이 기존 상장사의 회생을 강조했다면, 앞으로는 문제기업을 신속하게 퇴출해 우량 기업에 자원이 우선 배분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너도나도 증시 활성화를 외치고 있다. 문제기업의 과감한 퇴출 방안도 들어가야 증시 활성화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거래소 기업 심의위원회 독립성을 보장하고, 퇴출을 위한 정성적 평가 기준도 강화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