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집행 36억달러(2023년 평균환율로 약 46조8000억원), 투자 회수 4억달러(약 5조2000억원). 2023년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기록한 운용 실적이다.
당시 모든 펀드가 성과를 보인 가운데, 2013년 결성한 3호 바이아웃(Buyout·재매각 목적 기업 인수) 펀드는 투자금 대비 2.3배 수익을 냈다. 3호 펀드의 포트폴리오 기업은 홈플러스를 포함해 네파, 두산공작기계, 오렌지라이프(현 신한라이프) 등이 있다. 오렌지라이프의 경우 매각으로 2조원에 달하는 차익을 남겼다.
하지만 2015년 투자한 홈플러스는 인수 8년이 되도록 출구 전략을 찾지 못했다. 이유는 기업가치가 떨어져서다. MBK는 영국 유통기업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 지분 100%를 7조2000억원에 인수하면서 3호 펀드를 통해 3조2000억원을 투입하고, 금융권으로부터 2조7000억원을 차입했다. 인수 후엔 보유하고 있던 오프라인 점포를 팔아 현금화하고, 일부 점포는 다시 빌려 영업하는 세일앤리스백(매각 후 재임대) 전략으로 인수 금융을 갚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3년 회계연도(2023년 3월~2024년 2월) 홈플러스가 지출한 이자 비용은 3025억원, 리스료 등을 포함한 연간 금융비용은 총 4573억원에 달했다. 매출은 6조9314억원, 영업손실 1994억원을 기록했다. 부채비율은 3215%까지 치솟았다. MBK로 인수되기 전인 2013년 홈플러스의 매출이 7조3255억원, 영업이익이 2510억원인 걸 감안하면, 과도한 차입매수가 성장을 방해한 꼴이 된 셈이다.
결국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은 A3에서 A3-로 추락했고, MBK는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한 잠재적 자금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다. 그러나 시장에선 홈플러스 경영 실패에 대한 MBK 책임론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김광일 MBK 부회장이 홈플러스 공동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걸 고려하면, MBK를 단순히 재무적 투자자(FI)로만 보긴 어려운 탓이다.
MBK는 홈플러스 인수 후 인수 금융을 갚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오프라인 점포 20여 개를 처분해 현금 3조4000억원을 확보했다. 이중엔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알짜배기 점포도 포함됐다. 자연스레 매출과 이익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업계에선 MBK가 돈이 되는 건 팔아 챙기고, 나쁜 자산만 남게 되자 회생 신청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홈플러스에 투자한 3호 펀드의 운용 수익이 높았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라는 비난도 쏟아진다. 펀드 수익의 일부를 끌어다 해결하는 식의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책임지려는 노력 없이 금융 채무 탕감과 조정을 법원에 떠넘겼다는 거다. 그러나 MBK 측은 3호 펀드의 투자 기간이 끝나 이런 방식의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에 일각에선 MBK가 해당 펀드의 청산에 맞춰 고의로 기업회생을 택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선제적 대응’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홈플러스의 평판은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기업회생 절차가 개시된 지 하루도 안 돼 홈플러스 상품권 제휴사들은 결제를 중단했고, LG전자(066570) CJ제일제당(097950) 농심(004370) 롯데웰푸드 등이 납품 중단을 선언했다. 비어가는 매대를 찾을 고객은 없다. 경영 실패로 인한 피해는 결국 직원과 납품업체, 고객이 떠안게 됐다.
미국 경제 칼럼니스트 라나 포루하는 저서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에서 금융적 사고방식의 지배로 기업의 작동 방식이 왜곡되는 금융화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금융화란 ‘만드는 자(Makers)’가 ‘거저먹는 자(Taker)’에게 예속되어 버린 경제다. 여기서 만드는 자는 실질적인 경제 성장을 창출하는 사람과 기업을, 거저먹는 자는 고장 난 시장 시스템을 이용해 자기 배만 불리는 금융업자와 금융기관 등을 의미한다.
사모펀드 포트폴리오에 속한 기업들이 서로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기업들의 성장 촉진이 목적이 아니라, 펀드 자체의 돈을 불리는 목적으로 투자했기 때문이다. 또 사모펀드가 외식 프랜차이즈나 소매 업체처럼 부동산이 포함된 거래를 선호하는 것은 고정 자산을 확보해 임대료 수입을 챙기거나, 쪼개서 매각할 수 있어서다. 그의 분석에 홈플러스를 품은 MBK의 행보가 겹쳐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닐 거다.
사모펀드 자체의 목적이 수익 추구이기 때문에, 이런 평가가 모순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일부 사모펀드는 돈은 없지만 성장성이 높은 기업의 미래 가치에 거액을 투자해 성장을 지원하거나, 위기에 빠진 회사의 구세주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사모펀드=기업사냥꾼’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한 걸 보면, 수익만을 추구하는 사모펀드의 생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MBK는 고려아연(010130)의 경영권 인수 시도로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시장에선 홈플러스의 경영 위기를 촉발한 MBK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반대하는 여론이 많다. 금융감독원도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라는 관점에서 신(新) 금산분리 논의에 착수하겠단 의지를 밝혔다. 규제가 대안은 아니지만, 문제의식을 갖고 제도를 들여다본다는 건 환영할 일이다. 실물 경제를 위한 지속 가능한 ‘진짜’ 성장이 이뤄질 수 있도록 사회에 도움이 되는 시스템을 구축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