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최근 상장기업의 유상증자 적정성 여부를 심사하겠다고 나서자 ‘시장 경제를 역행하는 규제’라는 지적이 재계에서 쏟아졌다. 기업의 자금 조달 등 자유로운 경영 활동에 금융 당국이 개입할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심사 항목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도 공개하지 않았고, 일부 정성적 기준은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기업의 유상증자에 대한 우려를 여러 차례 언급했는데, 이 월권 적 규제에 이 원장의 목소리가 그대로 반영됐다.

이 원장은 그동안 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상법 개정의 필요성도 수차례 피력했다. 그러다 지난해 말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비슷한 내용의 상법 개정을 추진하자 결국 반대 입장으로 선회했다. 입장을 바꿨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이 원장도 상법 개정에 적극적이었다”며 법 개정을 밀어붙일 빌미를 줬으니 말이다.

이 원장의 ‘튀는 행동’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탄핵 정국의 혼란 속에서도 다수의 공직자들이 묵묵히 할일을 해나가는 지금, 굳이 ‘월권’ 논란을 부추기며 설화를 만들 때인가 싶다. 이 원장은 여전히 자신을 ‘뉴스의 주인공’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기업 경영에도 관여하겠다는 발상은 도를 넘었다. 금감원장과 금감원의 역할을 아무리 확대 해석해도 상법 개정에 정부를 대표해 의견을 내고, 유상증자와 같은 기업 경영의 중요한 의사 결정을 심사할 권한은 없다.

금감원이 지난달 발표한 우리·KB·NH농협 등 3개 금융지주의 정기검사 중간 결과도 논란을 빚었다. 금감원의 정기검사는 최소 1~2년이 지나야 결과를 최종 확정한다. 그런데 금감원은 이들 금융사의 검사가 끝난 지 두달여 만에 중간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원장은 결과 발표에 앞서 ‘매운 맛’을 보여준다며 예고편까지 공개하고, 카메라 앞에 서서 직접 브리핑도 했다. 이런 무대를 만들기 위해 이들 금융사 검사 결과를 서둘러 발표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동일 사고 예방이라는 해명도 궁색하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이번 조사 결과에 나온 부당 대출의 경우 대부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호황기 때 벌어진 사건이다”며 “지금은 부동산 침체기인데다 각 금융사도 신규 PF 취급에 신중을 기하고 있어 이런 부당 대출을 일으키기 쉽지 않다. 예방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이 원장은 자극적인 표현으로 뉴스의 중심에 섰지만, 금융권에선 ‘금융사를 범죄 집단처럼 몰아세웠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 원장만큼 뉴스를 몰고다닌 금감원장도 드물다. 그러나 금감원장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금감원은 금융사에 돈을 걷어 ‘감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감독과 검사, 제재 권한도 금융위원회에 위탁받은 권력이다. 그런데 이 원장은 금융사를 들러리 세우고 본인이 주인공을 자처하고 있다. 이젠 기업 경영에도 관여한다.

금융사를 관리·감독하면서 금융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금감원의 핵심 기능 중 하나다. 그런데 이복현의 금감원은 감독 실패의 책임은 벗어던지고 금융위와 금융사에서 위탁받은 권력의 칼만 휘두른다. 감독에 실패한 권력기관이 휘두르는 칼은 무딜 뿐이다. 시장이 주인공, 정부는 조연이라는 경제 대원칙은 정권이 바뀌고 금감원장이 교체돼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임기가 3개월여 남은 이 원장에게 이 원칙을 기대하긴 어렵게 됐다. 다음 금감원장은 명품 조연을 자처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