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여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Cincinnati) 신축 주택에 입주한 한 주민은 시공 건설사인 자링홈(Zaring Home)에 하자 신고를 했다. “카펫이 축축해졌는데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입주한 지 10주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현장을 조사해보니 집 벽 안쪽으로 결로(結露)가 생겨있었다. 벽돌벽의 안쪽에는 내부와 외부를 차단하기 위해 비닐막이 설치돼 있었다. 그런데 외부의 더운 공기와 에어컨 가동으로 인해 차가워진 실내 공기가 이 비닐막에서 만나면서 결로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자링홈은 모든 집을 다시 다 뜯고 고쳐줬다. 한 채당 한화로 6000만~7000만원 가량의 돈이 들어갔고 이 회사는 결국 파산했다. 1990년대 중반 연간 1500가구 이상을 공급하던 중견 건설사였다. 자링홈은 벽돌벽이 외부의 습기를 잘 흡수한다는 사실과 여름에는 에어컨을 작동시켜 실내 온도가 차갑다는 점, 그리고 찬 공기와 외부의 습기가 만나는 단열재인 비닐에서 결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놓쳤다.

미 중서부의 한 건설사 사례에서 배울 점도 있다.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책임의 원칙을 견지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연방정부이든 주(州)정부이든 기업이 벌인 일은 아무리 큰 희생이 있더라도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국내 상황을 돌아보면 씁쓸하다. 정부는 지난 19일 지방 건설 경기를 보완하겠다며 관계부처 합동 대책을 내놨다. 지방 미분양 아파트를 공공기관(LH)을 통해 매입해주고, 개발이익의 일정액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내는 제도인 개발부담금도 감면해주기로 했다. LH공사가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주겠다는 것은 17년 전인 2008년에도 나왔던 대책이다. 산업은행 등을 동원해 정책자금을 8조원 규모로 투입해 지원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안 팔리는 집은 사주고, 내야 할 돈은 감면해주고, 정책자금을 대준다는 게 이번 대책의 핵심이었다.

한 전문가는 “지방의 소멸 위기를 이야기할 정도로 인구가 줄어드는데 아파트를 수요도 고려하지 않고 공급하니 안 팔리는 게 당연한 일”이라며 “왜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이 대신 사줘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지방 인구 축소가 오랜기간 이어져왔는데 인구가 줄어드는 도시에 건설사들이 계속 아파트만 공급해온 것이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의미다.

‘미분양의 무덤’으로 불리는 대구는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1만5000명의 인구가 줄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민간 분양된 주택의 인‧허가 규모는 4759가구 줄어드는 데 그쳤다. 2014년 1013가구에 그쳤던 대구의 미분양 주택은 2023년에는 1만245가구로 10배 넘게 늘었다. 인구가 빠르게 줄고 있는 와중에도 건설사들이 주택을 계속 지었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다.

기업은 순간 순간의 결정과 판단으로 생사와 흥망의 기로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서점에서 인터넷 상거래로 방향을 튼 아마존과 TV 등 가전제품에서 반도체로 주력을 바꾼 삼성전자의 선택이 대표적이다. 자링홈이 단열재로 결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비닐막을 선택한 것과 같은 겉으로 보기에는 사소해 보이는 결정도 기업의 명운(命運)을 가른다.

그리고 위대한 기업이 나오는 다수의 국가에서는 이 선택의 결과를 온전히 기업이 책임지도록 한다. 그렇게 해야만 그들이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제대로 된 선택과 판단을 통한 경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늘 기업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쉬운 길을 택하도록 유도한다. 시장 상황과 역행하고 수요공급 상황조차 파악 못 해 팔리지 않은 물건을 대신 사주는 환경, 자금난에 빠지면 정책자금을 동원해 도와주는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바뀌는 기업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쟁을 치뤄야하는 우리 기업들의 야성(野性)을 없애는 것은 정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