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한국을 찾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신아 카카오 대표,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 등 국내 주요 기업인들을 만났다.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이 본격화한 가운데, 글로벌 AI 기업과 협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보이지만, 해외 기술 의존도가 과도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 KT는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협력을 공식화하며 사실상 자체 AI 모델 개발을 우선순위에서 미뤘고, 카카오도 마찬가지로 오픈AI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네이버만이 ‘소버린 AI’를 내세워 하이퍼클로바X를 고도화하고 있지만, 글로벌 AI 생태계가 빅테크 중심으로 재편되는 와중에 독자 노선을 지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해진 창업자가 7년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해 AI 전략을 직접 지휘하겠다고 나섰지만, 외부 거대언어모델(LLM) 기술 도입 가능성도 열어둔 상태다.
현재 국내 AI 기업들이 자본 열위에도 불구하고 10여 개의 LLM을 개발·보유하며 나름 선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이 모델들이 실제 시장과 산업현장에 얼마나 안착했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AI 인프라 문제 역시 풀리지 않았다. 한국이 보유한 GPU(그래픽처리장치)는 2000장 수준에 불과하고, 정부가 2027년까지 이를 3만장으로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글로벌 AI 기업들은 자체 AI 슈퍼컴퓨터를 구축해 압도적 격차를 벌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데이터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AI 추격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오지만, 아직 구체적 실행 방안은 미흡하다.
현재 미국은 AI를 핵무기 개발 수준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논의가 한창이고, 일본은 AI 인재 유치를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은 AI 인재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순유출국’으로 전락했다.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우수 인재와 기술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산학협력 생태계가 절실하다. 미국·중국이 대학·연구소·정부·기업을 긴밀히 연계해 자국 내 연구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사례가 그 중요성을 증명한다.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챗GPT급 성능을 10분의 1 수준 비용으로 만들어낸 일 역시 인프라보다 ‘사람과 기술력’이 더욱 중요한 경쟁력임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정부는 AI 인프라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대학·연구소와 기업이 자유롭게 협력해 데이터를 활용하고 연구 성과를 산업 현장에 접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AI 인재 양성과 유치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AI 3대 강국’ 비전은 결국 공허한 목표로 남을 공산이 크다. GPU·독자 모델 같은 지표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을 실제 산업적 경쟁력으로 바꾸는 동력은 사람과 연구, 그리고 이를 하나로 묶어낼 협력 체계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